獨斷論

子가 꼭 子爵의 의미일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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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가 꼭 子爵의 의미일까?

부르칸 2013. 12. 13. 12:35

기자를 한자로 箕子로 쓰는데

子를 어떤이는 성씨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이는 子爵이라고 하기도 한다.

 

근데 이 子는 夷狄의 왕을 폄하하는데도 사용하였다.

 

춘추좌전을 보자.

魯僖公

二十有七年春杞子來朝

27년 봄에 기자(杞子)가 내조했다.

 

傳에 이렇게 써있다.

二十七年春 杞桓公來朝 用夷禮 故曰子(주1) 公卑杞 杞不共也(주2)

27년 봄에 기환공(杞桓公)이 와서 조견(朝見)하였다. 조견할 때 이적(夷狄)의 예(禮)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자(子)라고 한 것이다. 공公이 기자杞子를 비천卑賤하게 여겼으니, 이는 기자杞子가 공경恭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1

杞 先代之後 而迫於東夷 風俗雜壞 言語衣服有時而夷 故杞子卒 傳言其夷也 今稱朝者 始於朝禮 終而不全 異於介葛盧 故唯貶其爵

기杞는 선대의 후손이지만 동이와 가까워서 그 풍속이 잡괴하고 언어와 의복이 동이와 같으므로 杞子卒이라고 하였음은 傳言其夷也(해석불가). 지금 내조한 자를 칭함에 조례를 시작하고 마침이 완전하지 못하니 이는 介葛盧의 경우와는 다르다. 따라서 그 爵位만 폄하한 것이다.

 

주2

杞用夷禮 故賤之  

기杞가 이적의 예를 사용하였으므로 이를 비천하게 여긴 것이다.

즉 춘추시 周國의 천자를 제외한 모든 나라의 왕을 公이라 하였는데

지금 기국杞國의 왕도 公이라 칭해야 하지만 杞子라 한 것은 그들이 동이의 예를 갖추었기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箕子도 箕國의 왕이었지만 동이의 예를 갖춘 나라의 왕이었기에 箕子라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보니 중국의 箕子와 우리역사의 箕國 임금을 칭한 箕子를 동일시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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