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斷論

구려(九黎)와 이(夷) 본문

어원연구

구려(九黎)와 이(夷)

부르칸 2012. 9. 13. 14:25

고대에 天(천)을 “덩글”로 정도로 불렀다. 왜냐하면 고대인들은 하늘을 크고 넓다랗고 둥그런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음가는 정확한 것이 아니며 “동글”, “둥글”, “댕글”, “당갈”, “단간” 등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크고 넓다랗고 둥그런 하늘에 있는 이를 가리켜 “덩 글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한자로 훈음병차하여 “덩글”은 丸(환)으로 쓰고 “이”는 仁(인)으로 써서 丸仁(환인)이라 하였지만 불교가 융성해짐에 따라서 丸仁(환인)이 桓因(환인)이 되었다고 하였다. 쉽게 풀이하면 丸仁(환인)이란 곧 “대가리”라는 말이라고 하였다.

또한 덩글이「丸仁(환 인)」의 아들을 “환웅”이라 하지만 이 역시도 丸雄(환웅)이라고 써야 한다. 雄은 그 뜻이 “수ㅎ”인데 이는 고대에 男神(남신)의 의미를 갖고 있는 존칭어였다. 따라서 丸雄은 “덩글 수”의 의미를 갖는데 그 음가가 변화하여 백제에서는 “달솔”이라고 하였고 오늘날 말로 “달수”라는 흔한 이름이 되었다고 하였다.

 

덩글「丸(환)」로부터 파생된 말 “九黎(구려)”


하늘과 같은 존재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의미는 “덩 글「丸(환)」”이다. 

九黎(구려)라는 말도 “丸”이란 의미에서 파생된 것인데, 말이란 원래 이런 기본적인 의미로부터 시작하여 음가를 조금씩 변화시키면서 갖가지 의미가 다른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동그랗다는 말이 그렇게 크다는 의미를 가지 않아서 그대로 적용하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九黎(구려)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丸(환)으로부터 파생된 좋은 예가 오늘날 말에도 존재한다.


작은 물건이 잇따라 구르는 모양을 “대 굴대굴”이라고 한다. 이는 丸의 의미에 해당하는 “대굴”을 의태어로 사용한 것이다. 또한 “대굴대굴”의 모양을 묘사하는 동사는 “구르다”인데 집작할 수 있듯이 “대굴”의 “대”를 삭제하고 “굴”에 어미를 붙여 “구르다”라고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丸(환)의 의미에 해당되는 명사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

명사를 만드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 주격조사 “이”를 붙이는 것이다. 밀어서 열고 닫는 문을 가리켜 “미닫이”라고 쓴다. “밀고 닫다”는 의미를 “미닫”으로 쓰고 그 뒤에 주격조사 “이”를 붙인 것이다. 이 외에도 “길이”, “높이”, “넓이” 등 셀 수 없이 많다.


따라서 이와 같은 규칙을 丸을 나타내는 “(대)굴”에 적용하여 “이”를 붙이면 “굴이” 즉 “구리”가 된다. 이를 한자로 九黎라고 적은 것이다. 그렇다! 九黎(구리)란 바로 하늘처럼 큰 사람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구리「九黎」란 따라서 덩글이「丸仁」와 같은 어원에서 시작된 말이지만 덩글이「丸仁」는 하느님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고 “덩”을 뺀 “글이” 즉 “구리”는 하느님의 자손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목구멍소리 “ㄱ”은 같은 목구멍소리인 “ㅇ”으로 변하기도 한다.[1] “구리”의 초성 “ㄱ”이 “ㅇ”으로 변하면 “우리”가 되는데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쓰던 “우리”라는 말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구리”에서 파생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우리라고 말할 때 우리는 벌써 우리는 하늘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구리「九黎」와 신불(神市)


우리사서에는 하나같이 치우씨가 다스렸던 나라를 “배달국” 혹은 “단국” 혹은 “신불”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왜 유독 지나인의 기록에 구리(九黎)라고 하였는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구리「九黎」라는 말은 하늘을 뜻하는 덩글「丸」과 그 어원이 같다. 구리「九黎」라는 국가의 의미는 곧 “하느님의 나라”라는 말이다. 하느님을 神이라고 적고 “나라”를 “불”로 적으면 곧 신불(神市)이 되므로 “구리”라고 하나 神市라고 하나 둘 다 같은 말이 되는 것이다.

 

夷(이)의 음가


본인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우리를 “夷”라고 지칭하는 것은 지나인들이 사용한 것이지만 그 저편에는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夷의 음가가 현재 “이”이지만 고대에는 “리”일 가능성이 있다. 강희자전을 보자.


(尸+二) 《玉篇》古文夷字。陽(尸+二),地名。又《集韻》古文仁字。

(尸+二)은 옥편에서 기록하기를 夷의 옛글자라고 하였다. 陽(尸+二)은 지명이다. 또한 집운에서는 仁의 옛글자라고 하였다.


고대에는 (尸+二)와 仁과 夷가 통용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仁의 중국어 발음이 “ren”이다. 세 글자 (尸+二)와 仁과 夷의 발음이 모두 고대에는 “리”였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다.


위 세 가지 글자를 우리나라에서는 고대에 어떻게 발음하였을까? 삼국사기 지명에는 그 독음이 상이한 것이 몇 개가 있어 연구자들로 하여금 헷갈리게 하는 글자가 있는 그 글자는 尸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삼국사기에 쓰인 尸라는 글자는 원래 (尸+二)였던 것인데 필사하는 자가 尸로 잘못 베껴 쓴 것이다(물론 본디 尸라는 글자였기에 尸로 남아 있는 지명도 있는데 沙尸良縣과 大尸山郡 등이 그 예이다). 


阿尸兮縣, 一云阿乙兮. 아시혜 현은 또한 아을혜 현이라고도 한다.

阿尸良國, 一云阿那加耶. 아시량국은 또한 아나가야라고도 한다.

有鄰郡, 本高句麗于尸郡. 유린군은 본래 고구려 우시군이다..


위 3가지 지명에 쓰인 尸는 尸가 아니라 본래 (尸+二)이었다. 阿乙兮와 阿尸兮는 모두 “알혜”의 음차이고, 阿尸良國은 “알양국”의 가치이며 阿那加耶은 “안가야”의 가차이다. 有鄰郡(유린군)이 본래 于尸郡(우尸군)이라는 것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尸 즉 (尸+二)의 독음은 鄰과 비슷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夷의 독음이 곧 (尸+二)와 같으며 이는 隣(린)과 비슷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자신있게 夷의 독음이 고대에 “리”라고 단언한다.

 

夷(리)의 의미


한자는 뜻과 음이 서로 얽혀 있는 글자이다. 즉 夷라고 썼을 때 이 글자의 독음이 “리”인 이유가 있으며 夷라고 글자를 만들었을 때 글자를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다.

夷는 우리민족을 가리키는 글자이다. 우리민족은 앞서 “하늘의 자손”이라는 의미로 “구리”라고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구리”의 "구"라는 음을 생략하고 "구리"를 대표하는 음가로 "리"를 삼고 또한 이를 문자로 나타내기 위하여 夷를 만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夷라 하기도 하고 九夷하기도 하고 九黎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다.


夷는 大(대)와 弓(궁)으로 구성된 글자이다. 우리민족을 지칭하는 글자로 굳이 大(대)와 弓(궁)을 쓴 것은 우리가 활을 잘 쏘고 잘 만드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大弓을 “대궁”이라고 읽으니 이는 丸을 뜻하는 “덩글”과 그 음이 비슷한 이유도 있었으리라.


 

 

--------------------------------------------------------------

[1] 양주동, 증정 고가연구, 일조각(1977).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