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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비량공 (1)
獨斷論
변태소설같은 남당유고 화랑세기
남당유고 화랑세기는 아무리봐도 위서임에 틀림이 없다. 남당유고에 쓰인 몇몇 이야기가 훗날 역사적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그 이외의 남녀관계에 대한건 모두 일본인들이 첨가한 것임에 분명하다. 일례로 "구리지"가 있다. 이는 사다함의 아버지인데 삼국사기에 그냥 이름만 나와 있다. 근데 이 구리지를 두고 화랑세기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斯多含者仇利知子也. 初比梁公慕碧花后常如其厠. 法興大王愛比梁公 不禁之果通后生子 故曰仇利知. 5세 사다함(斯多含)은 구리지(仇利知)의 아들이다. 처음 비량공(比梁公)이 벽화후(碧花后)를 그리워하여, 늘 후(后)의 뒷간에 갔다. 법흥대왕이 비량공을 사랑하여 금하지 않았다. 과연 후(后)와 정을 통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구리지라 하였다. 아무리 변소에서 성관계를 가져 애를 낳았다고..
조선사독단/오국사
2013. 10. 15. 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