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Histogram
- 후한서
- 한서지리지
- 낙랑군
- 풍백
- 독사방여기요
- 히스토그램
- 태그를 입력해 주세요.
- ANOVA
- post hoc test
- repeated measures ANOVA
- 한서
- 신라
- linear regression
- 창평
- 기자
- spss
- 패수
- 통계
- 선형회귀분석
- 고구려
- 단군
- 지리지
- 기자조선
- t test
- categorical variable
- R
- 유주
- 우분투
- 통계학
- Today
- Total
목록고구려 (6)
獨斷論
중국역사책에 나타난 우리역사의 지명은 고대로 올라갈수록 그 본래 이름의 뜻이나 그 민족의 특성에 근거하여 다른 한자로 표현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후한서에 九夷(구이)라 표현하면서 畎•于•方•黃•白•赤•玄•風•陽이라 분류하였는데 이들은 진짜 이름이 아니라 중국인의 관습에 따라 다르게 적은 것이다. 따라서 이 아홉 가지 이름을 각각 분석해보면 각 민족의 진짜 이름을 헤아려볼 수가 있다. 진짜 민족의 이름을 알아보려면 그 민족의 민속신앙을 참고하면 쉽게 파악함이 가능하다. 우리민족은 대개 상고로부터 ‘봉황’을 신앙하는데 봉황에 대하여 爾雅(이아)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鶠鳳其雌皇. 注, 瑞應鳥, 雞頭, 蛇頸, 燕頷, 龜背, 魚尾, 五彩色. 高六尺許. 鶠(언, 봉새)은 鳳(봉, 봉새)의 암컷을 말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관련된 낙랑 정리 고구려 백제 신라 BC28 낙랑인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침범하였다 三十年 樂浪人將兵來侵 BC20 진한의 유민으로부터 변한, 낙랑, 왜인에 이르기까지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지 않음이 없습니다. 三十八年 "自辰韓遺民 以至卞韓·樂浪·倭人 無不畏懷 BC15 가을 8월에 사신을 낙랑에 보내 우호를 닦았다. 四年 春夏 旱 饑疫 秋八月 遣使樂浪修好 BC11 낙랑태수의 사자가 고하여 말하였다…이로 말미암아 낙랑과 우호를 잃게 되었다. 樂浪太守使告曰…由是 與樂浪失和 BC8 여름 4월에 낙랑이 말갈을 시켜 병산책을 습격하여 깨뜨리고는 100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가을 7월에 독산책과 구천책의 두 목책을 세워 낙랑과의 통로를 막았다. 十一年 夏四月 樂浪使靺鞨襲破甁山柵 殺掠一百餘..
역사책에 쓰여 있는 한자(漢字)로 된 지명이나 인명들은 그대로 직역하면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어서, 한역(漢譯)을 하게 되면 역사의 본질을 그르치게 되므로 그 이름들을 바로잡고자 한다. 1. 인물* 桓因대부분 桓因(환인)을 "하느님"의 음사(音寫)이므로 "한님"으로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桓因(환인)은 불교가 유행하던 시절에 원래의 한자를 고쳐 바꿔 쓴 것인데 이제 그 한자를 바로잡으면 丸仁(환인) 혹은 丸仁(환인)으로 써야 할 것이다. "하늘"의 어원은 "한"+"알"이다.즉, 하늘을 아주 큰 동그란 것으로 보고 그것을 표현하기를 "한알"이라 하였는데 그것이 지금 변하여 "하늘"이 된 것이다. 따라서 桓因(환인)은 丸因(환인)으로 써야 맞는데 丸이란 "알"이란 말이고, 因은 "님"의 음사이다...
북사(北史) 고구려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사람들은 모두 머리에 절풍(折風)을 쓴다. 그 모양은 고깔(弁)과 같은데, 사인(士人)은 두개의 새깃을 더 꽂는다. 귀한 사람들은 그 관(冠)을 蘇骨(소골)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자주빛 비단으로 만들어 금이나 은으로 장식한다. www.history.go.kr에서 퍼옴 주서에는 골소라고도 하였다. 소골(蘇骨)은 아래와 같이 고구려 사람이 쓰던 것으로 보통 텔레비같은데서는 신라 화랑들이 하고 다닌다. 蘇骨을 '속곳'을 음차하였고 이는 '솟은 갓'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1] 骨의 종성은 'ㄹ'이고 현대중국어에서도 gu로 발음하므로 종성이 'ㄷ'으로 대표되는 '곳'이라 해석하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다. 우리나라는 관직에 있는 것을 '벼슬'한다고 했음으므로 蘇骨이라고 표..
사람의 몸에서 약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허리인데 그 어원은 대개 허(虛)한 곳이라는 뜻으로 '虛이'라 할수도 있겠다. 이는 아래와 같은 음운변화를 거쳐 오늘날 허리가 되었다고 본다. 虛이 > 헛이 > 허디 > 허리 허리와 비슷한 말로 '허구리'있는데 이 역시 '虛구리'로 해석할수 있으며 사투리에서는 허구리를 허구레라고도 한다. 즉, 허리와 허구리와 허구레는 모두 물건의 잘록한 장소나 부분을 나타내는 말로 '虛리', '虛구리', '虛구레'로 볼수 있다. 그렇다면 산꼭대기의 주변은 뭐라 할수 있을까? 꼭대기를 중세국어세서 '곡'라 한것을 고려한다면 산꼭대기의 주변은 '곡구레', '곡구리', '곡리'가 될수 있을 것이며, 공교롭게도 첫음절 '곡'이 한자어 高와 비슷하므로 인하여 '高구레', 高구리', '高리..
1. 高는 음차인가 漢譯인가? 엄밀히 말하면 훈음병차이다. 高句麗라는 국호는 첫도읍 紇升骨(흘승골)을 따라 지었다. 우리옛말에 /h/의 음가가 없었으므로 紇은 '슬'이요 升은 사이시옷을 나타내며 骨은 그냥 '고을'이다. 즉 紇升骨은 '슰골'을 음차한 것이고 이는 오늘날말의 '수릿골'에 해당된다. '수릿골'이란 달리말하면 '꼭대기'고을인데 '대기'는 '푼수대기'와 같이 그저 관습상 붙는 접미어요 高의 뜻을 갖는 우리말은 '꼭'이며 중세국어에서는 '곡'이었다. 여기에 요즘은 대개 '멍텅구리'와 '아구리' 같은데서 안좋은 의미로 많이 쓰이는 파생접사 '구리'를 붙여 나랏니름 '곡구리' 즉 '고구리'를 만들었지만 '구리'는 고대에 일반적인 파생접사였다. 2. 고구려일까 고구리일까? 이걸가지고 쓸데없이 싸우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