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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어원연구 (32)
獨斷論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인 시절에 어른들이 "일본 총독이 그 땅이 하두 넓어 大田이라 이름하였다"고 말하곤 하였다. 그땐 몹시 기분이 안 좋았었다.. 요즘은 일본총독 얘기는 삭제된체 대전은 땅이 넓어 한밭이라하고 大田이라 한다는 말만 돌고 있다. 大田이란 이두나 향찰 표기이다. 大는 훈으로 읽어 '한'이요 그 뜻은 '크다'가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고 본디 '한 참'으로 생각된다. 한참이란 역참사이의 거리로 25리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유성 동쪽 25리 되는 것에 대전천이 있다고 하였다. 田은 훈으로 읽어 '밭'이지만 그 뜻은 현대어 '밖'이다. 중세국어에 '밖'은 ㄱ곡용을 하는 "밧그로"와 같이 표기되는바 '밭田'과 '밧外'의 음이 같음으로 인하여 세간의 이두나 향찰표기에 자주 등장하는 언어의 유희이다. 즉,..
깍두기.. 우리동네에서는 "까따리"라고 했다. 어린 동생을 데리고 온다거나 운동을 좀 못할때 한쪽 편이 숫자가 많아지더라도 한쪽에 껴주는 문화다. 다른동네에서는 놀이를 잘 못하는 친구를 한쪽편에만 껴주지 않고 자기 마음먹은데로 이쪽편에 서다가 저쪽편에서곤 했다. "까따리"라고 하지 않고 "와따리가따리"라고 불렀다. 지금생각해보면 "까따리"는 "갔다리"고, "와따리가따리"는 "왔다리갔다리"인것 같다. 이말이 왜 흔하디 흔한 반찬 깍두기로 변했을까? 혹, 까따리 또는 와따리가따리 문화가 마음에 들지 않자 이들을 속으로 천대하면서 옛날에는 흔하게 밥상에 오르던 깍두기로 그 말이 변하였을수도 있으리라.
밭다리는 바깥다리의 준말이고, 밭사돈은 바깥사돈의 준말이라고 나와있지만 틀렸다. 바깥은 줄이면 '밖'이지 '밭'이 되지 않는다. 근데 왜 밭다리 밭사돈이라는 말이 존재하게 되었을까? 1980년대 교과서에도 밧다리라고 표기되었다. 밖[外]는 19세기까지만 해도 그 발음이 밧(外)이었다. 이 말은 ㄱ곡용하는 언어로 밧그로(밖으로), 밧게서(밖에서), 밧게(밖에) 등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현재 바깥다리와 바깥사돈의 옛말은 '밧다리'와 '밧사돈'이다. 그런데 밧이라는 말이 밖으로 바뀜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통상적으로 부르는 밧다리와 밧사돈은 그 어원의 발음이 바뀌었고 그걸 알지못하는 대중들은 이를 밖다리와 밖사돈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계속 밧다리와 밧사돈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표준어를 만들면서 없어진 말 '밧'을..
닭도리탕의 '도리'는 "매운 고추 양념"이라는 뜻이다. 닭도리탕은... 매운 양념을 탕으로 끓인 것으로 간장을 주요한 양념을 사용하던 옛날 우리나라 전통 음식과는 차이가 있다(물론 경상도나 전라도 지방은 고추가루 양념을 많이 쓰지만 경기 충청 등의 음식이나 그 북쪽으로 올라가면 고추양념을 잘 하지 않고 김치도 배김치를 주로 먹었다). 대전에가면 '두부두루치기'라는 음식이 있다. 대전음식은 대부분 맹숭맹숭한 가볍게 간을 하여 맵고짠 전라 경상 음식과 대비된다. 하지만 유독 '두부두루치기'만은 이렇게 고추양념을 듬뿍한다. '두루'란 이런 강한 양념을 말하는 것이리라. '도리'가 아니라 '두루'가 된 이유는 '우' 모음을 많이 사용하는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와 '두부'의 모음 영향을 받아 '두부도리'가 '두부두..
삼국사기에 安市를 丸都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하지만 두 글자는 '알불'로 읽는 글자이다. 우선 丸都를 보자.丸은 뜻이 '알'이고 都는 '불'이다.따라서 뜻으로 읽으면 丸都는 환도가 아니라 '알불'로 읽어야 한다. 安市는 安巿로 써야 맞다. 즉 市(시)가 아니라 글자가 모양이 비슷한 巿(불)이라는 글자인데 이를 많이 아는 글자인 市로 통용하여 쓰는것 잘못되었다. 그러면 安은 왜 '알'로 읽어야 하는가?삼국사기 지리지를 보자. 安賢縣, 本阿尸兮縣, 一云阿乙兮 安은 阿尸(아시)와 같고 阿乙(아을)과 같다. 즉 安은 '알'로 읽었다. 阿尸는 아시지만 '아~ㄹ'로 읽어야 한다. 이두나 향찰을 조금만 공부해봤다면 尸는 'ㄹ'이라는걸 안다. 賢은 兮와 같은데 '기'로 읽는 글자이다..
연기는 물건이 탈 때에 일어나는 부옇고 매운 기운을 말한다. - 함경도 방언: 내구리, 내굴“앙이 땐 구묵에 내굴이 나겠음?” ‘물건이 타면서 내는 연기 또는 매운 기운’을 가리키는 함경도 방언형이다. ‘내구리’는 ‘내굴’에 ‘이’가 결합된 명사이다. 한편, 함경도 지역에서는 표준어의 ‘내다’(연기나 불이 아궁이로 되돌아 나오다)에 대응되는 동사 ‘내굴다’, ‘내구다’도 쓰인다. 위 예문에서 “앙이 땐 구묵에 내굴이 나겠음?”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습니까?”라는 속담의 함경남도 방언이다. - 평안북도 방언: 낸내, 내, 냉괄, 냉과리, 내구리 는 비난수하는 나의 맘, 헐버슨 山우헤서, 러진 닙 타서 오르는, 낸내의 한줄기로, 바람에 나붓기라 저녁은, 흐터진 ..
/ㅎ/의 부재 아주 먼 옛날 우리말에는 /ㅎ/의 음가가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거센소리 /ㅋ/, /ㅌ/, /ㅊ/, /ㅍ/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주 쉬운 예로 거란과 몽골에서 군장을 뜻하던 汗(한)을 신라에서 居西干(거서간)과 麻立干(마립간)등과 같이 干(간)으로 적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역사책에 만약 현대어에서 위 다섯 가지의 음가를 갖는 한자를 해석한다면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 대개 현대어 /ㅎ/는 고대국어에서 /ㅅ/과 /ㄱ/과 /ㅂ/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나머지 /ㅋ/과 /ㅌ/과 /ㅊ/과 /ㅍ/은 경우에 따라 매우 다른 해석이 가능하므로 한결 더 유의하여야 한다. 간단한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阿斯達(아사달)을 九月山(구월산)이라고 틀린 해석하기도 하는데 阿斯達은 한자 그대로 읽으면 아사달이지만..
포항에 가면 안강 옆에 '기계'라는 마을이 있다. 처음들을때 무슨 마을이름이 기계냐라고 할수도 있으나 우리가 생각하는 기계(機械)가 아니라 한자로 杞溪라고 쓴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杞溪縣 本 芼兮縣 一云 化雞 이라고 되어 있는데 정덕본 삼국사기에 杞를 木巳로 썼다. 이는 耜(사)의 이체자이다. 化雞는 화계로 읽는게 아니라 '사계'로 읽는데 고대국어에 /ㅎ/이 없었기때문이다. 그렇다면 杞溪는 틀렸고 (木巳)溪 즉 耜溪가 맞는데 이는 발음이 사계이다. 芼兮역시 모혜가 아니라 '모계'로 읽는데 고대국어에 /ㅎ/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杞溪의 杞는 한 글자가 두 글자이고 木과 巳를 한 글자로 잘못 베껴 쓴 것으로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巳는 사이발음으로 들어가 木巳溪는 '몫계"로 읽어야 芼兮와 발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