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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연구

고대국어의 특징 - 첫번째

부르칸 2013. 10. 24. 19:59

/ㅎ/의 부재

아주 먼 옛날 우리말에는 /ㅎ/의 음가가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거센소리 /ㅋ/, /ㅌ/, /ㅊ/, /ㅍ/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주 쉬운 예로 거란과 몽골에서 군장을 뜻하던 汗(한)을 신라에서 居西干(거서간)과 麻立干(마립간)등과 같이 干(간)으로 적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역사책에 만약 현대어에서 위 다섯 가지의 음가를 갖는 한자를 해석한다면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 대개 현대어 /ㅎ/는 고대국어에서 /ㅅ/과 /ㄱ/과 /ㅂ/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나머지 /ㅋ/과 /ㅌ/과 /ㅊ/과 /ㅍ/은 경우에 따라 매우 다른 해석이 가능하므로 한결 더 유의하여야 한다. 간단한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 阿斯達(아사달)을 九月山(구월산)이라고 틀린 해석하기도 하는데 阿斯達은 한자 그대로 읽으면 아사달이지만 사이발음이 첨가되어 ‘아삳달’과 같이 발음한다. 이는 九를 고대에 /ㅎ/의 부재로 인하여 ‘아홉’이라 하지 않고 ‘아솝’과 같이 발음한 것과 비슷하며 ‘아삳’과 ‘아솝’의 발음은 비슷한 면이 있다.
  • 卒本(졸본)을 忽本(홀본)이라고도 쓰는데 /ㅎ/의 부재로 인하여 忽을 ‘홀’로 읽지 않고 ‘솔’로 읽었기 때문이다. ‘졸’과 ‘솔’도 역시 비슷한데 현대어에서 ‘수리「高」’를 뜻한다. 
  • 彌鄒忽(미추홀) 또는 買召忽(매소홀)은 ‘물 고을’이란 뜻이며 ‘밋골’ 또는 ‘맷골’로 발음되는 한자 표기인데 여기 쓰인 鄒와 召는 모두 사이시옷을 나타내는 글자임을 유의하여야 한다. 삼국사기에 忽을 대신하여 지역명 뒤에 骨(골)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 최남선이 箕子(기자)를 ‘개아지’라 하여 해와 연관시킴은 ‘해’의 고대어가 ‘개’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후대에 王岐縣(왕지현)을 皆次丁(개차정)이라 하였으므로 王에 해당되는 고대어 ‘皆(개)’가 삼국사기 지역명에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犬(견)을 뜻하는 15세기에 ‘가히’라 하여 그 발음이 매우 다르다.
  • 解慕漱(해모수)는 ‘개모+수’인바 ‘개마고원’의 ‘개마’, 즉 高(고)를 뜻하는 고대어 ‘개마’를 解慕로 음차하고 남성존칭어미 ‘수’를 漱로 음차한 것이다.

 

이중자음 ‘ㄷㄹ’

고대국어의 또 다른 특징은 이중자음 ‘ㄷㄹ’이다. 이 이중자음은 쉽게 생각하기에 ‘드르’ 정도로 소리 날 것 같으나 사실 이는 ‘ㅈㄹ’에 가깝게 발음된다. 마치 영어의 tree가 ‘트리’가 아니라 ‘츠리’로 소리 나며 ‘dry’가 ‘드라이’가 아니라 ‘즈라이’로 소리 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만 시대가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ㄷㄹ’의 음운변화는 복잡해졌다.

  1. ‘ㄷㄹ’ > ‘ㅈㄹ’ > ‘ㅿ’ (‘ㅿ’이 다시 ‘ㅅ’과 ‘ㄹ’과 ‘ㄴ’과 ‘ㅇ’으로 분화)
  2. ‘ㄷㄹ’ > ‘ㅈㄹ’ > ‘ㅈ’
  3. ‘ㄷㄹ’ > ‘ㅈㄹ’ > ‘ㄹ’ > ‘ㄴ’과 ‘ㅇ’ (마지막 변화는 두음법칙)
  4. ‘ㄷㄹ’ > ‘ㄹ’ > ‘ㄴ’과 ‘ㅇ’ (마지막 변화는 두음법칙) 

따라서 역사의 기록에 한자의 음독이 위 어떤 경우에 해당된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의 음 ‘ㄷㄹ’에서 왔다고 의심해 봐야 한다. 보통 학교에서 배울 때 ‘ㅿ’은 영어의 /z/와 같은 발음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zr/로 봐야 더 합당하다. 훈민정음에 “ㅿ如穰字初發聲”라고 한 것은 ‘ㅿ’이 /z/이 아니라 오히려 /r/과 비슷한 음운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穰이 한극 중국 일본에서 통용되는 발음을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표 1. 穰의 한국 중국 일본의 발음 비교

 

 穰

 한국

 양

 중국

 ráng(랑)

 일본

 じょう(죠우)


한자음은 한국 일본 중국이 대개 비슷하지만 위와 같이 다른 이유는 이 글자의 초성의 고대발음이 이중자음 ‘ㄷㄹ’에서 시작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발음도 대개 ‘량’이 되어야 하지만 두음법칙으로 인하여 ‘양’이 된 것도 주의를 요할 일이다.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나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 등에 日(일)의 중국발음을 ‘ㅿ’로 설명하였으며 현대 일본어의 日의 음독이 にち(니치) 또는 じつ(지츠)이고 현대 중국어에서는 日을 rì(리)로 발음함은 日의 고대발음에 이중자음 ‘ㄷㄹ’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더 확연하게 대비되는 말로는 仁과 人이 있는데 한중일 발음을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표 2. 人과 仁의 발음 비교

 

 人

 仁

 한국

 인

 인

 중국

 rén

 rén

 일본

 じん(진) 또는 にん(닌)

 じん(진) 또는 にん(닌)


현대 한자발음 이외에 역사기록에 나타난 ‘ㄷㄹ’의 변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지증왕의 이름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 냉수리비에서 각기 다른 한자 표기를 하고 있다.

 

표 3. 지증왕의 한자 표기 비교

삼국사기 

 삼국유사

 냉수리비

 智證麻立干(지증마립간)

 智訂麻立干(지정마립간)

 

 智大路(지대로)

 智大路(지대로)

 

 智哲老(지철로)

 智哲老王(지철로왕)

 

 智度路(지도로)

 智度路王(지도로왕)

 至都盧(지도로)


이렇게 여러가지 표기로 사용함은 이중자음 ‘ㄷㄹ’ 때문이다. 至都盧(지도로)와 智度路(지도로)와 智大路(지대로)는 ‘지ㄷ로’의 음차인데 변화하여 ‘지ㅈ로’가 되었으니 智哲老(지철로)로 음차함이 가능하고 더 변화하여 ‘지’이 되어 智證(지증) 또는 智訂(지정)으로 음차한 것이다.


지증왕의 이름보다 더 다양하게 변화한 것은 女眞族(녀진족)의 이름이다. 宋史全文(송사전문)에는 女眞(녀진)의 본명이 朱里眞(주리진)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大金國志(대금국지)에는 金國(금국)의 본래 이름이 珠嚕凖(주로준)이며 女眞(녀진)은 잘못 전해진 말이라고 하였다.  만주원류고에는 金國(금국)의 본명은 珠里眞(주리진)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이름으로는 珠申(주신)과 肅慎(숙신)이 있다고 했으며 잘못 전해진 이름으로 慮眞(려진)이 있다고 했다.  모두 이중자음 ‘ㄷㄹ’의 음운변화로 생기는 다양한 기록들이다. 朱里眞과 珠嚕凖은 ‘ㄷ루진’의 변이 ‘ㅈ루진’의 한자표기이고 ‘ㄹ’이 탈락된 ‘주진’은 珠申과 肅慎으로 표기하였고 ‘ㅈ’이 탈락된 ‘루진’은 女眞과 慮眞이 되었다.


지금까지 설명한 이중자음 ‘ㄷㄹ’의 변화는 ‘조선’과 ‘기자’와 ‘치우’와 ‘구려’의 어원을 밝히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되므로 잘 숙지해 두어야 한다.

다음편 고대국어의 특징에서는 종성자음의 미분화(未分化)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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