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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斷論
진번, 현도, 고구려 다물 그리고 제비 본문
중국역사책에 나타난 우리역사의 지명은 고대로 올라갈수록 그 본래 이름의 뜻이나 그 민족의 특성에 근거하여 다른 한자로 표현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후한서에 九夷(구이)라 표현하면서 畎•于•方•黃•白•赤•玄•風•陽이라 분류하였는데 이들은 진짜 이름이 아니라 중국인의 관습에 따라 다르게 적은 것이다. 따라서 이 아홉 가지 이름을 각각 분석해보면 각 민족의 진짜 이름을 헤아려볼 수가 있다.
진짜 민족의 이름을 알아보려면 그 민족의 민속신앙을 참고하면 쉽게 파악함이 가능하다. 우리민족은 대개 상고로부터 ‘봉황’을 신앙하는데 봉황에 대하여 爾雅(이아)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鶠鳳其雌皇. 注, 瑞應鳥, 雞頭, 蛇頸, 燕頷, 龜背, 魚尾, 五彩色. 高六尺許.
鶠(언, 봉새)은 鳳(봉, 봉새)의 암컷을 말한다. 상서로운 새인데 닭의 머리와 뱀의 모가지와 제비의 턱과 거북이의 등과 물고기의 꼬리를 하고 있다. 5가지 색을 갖는데 높이가 6척이다.
닭은 중세국어에 ‘’이라 했고 상고시대국어에서는 ‘드ㄱ’이라 했다. 종성 ‘ㄱ’은 종종 탈락되어 ‘드’로 변하고 더 변하여 ‘’가 되며 이를 중국사서에서 ‘朝’로 음차하였는데 이는 상고시대 漢語에서 朝는 ‘dhraw’로 발음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봉황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燕「제비」도 중국역사책에 함축적으로 기록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玄菟(현도)’이다. 應劭(응초)는 漢書(한서)에서 玄菟郡(현도군)의 주석에 眞番朝鮮胡國「현도군은 진번조선으로 胡(오랑캐)의 나라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응초는 왜 현도군이 진번조선이라고 주석하였을까? 그것에 대한 해답은 상고시대국어에 있다. 眞番은 고대국어 ‘ㅂ’를 음차한 것인데 이는 오늘날 ‘제비’를 뜻한다. 아래 표에 원시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민족의 작은 새 또는 제비를 지칭하는 말을 나타내었다.
제비의 원시 알타이 어족 발음 비교
- Proto-Alatic: zibV (작은 새)
- Proto-Mongolian: sibawu (새)
- Buriat: šubūn (새)
- Proto-Tungus-Manchus: sibi (제비)
- Proto-Korean: čjǝ̄pì (제비)
제비를 달리 표현하면 玄鳥(현조)인바 중세국어에 이는 ‘현됴’였음은 다 아는 바이다. 그런데 이 땅이 중국의 땅이 되자 ‘현됴「玄鳥」’를 고쳐 ‘玄菟’라 하고 조선의 땅에서 봉황의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고구려는 卒本扶餘(졸본부여)의 땅에서 일어났지만 眞番朝鮮(진번조선)의 정통을 잇고자 하였다. 삼국사기에 송양이 추모왕에게 항복해오자 그곳을 多勿都(다물도)로 삼았다고 하였고 옛 땅을 회복함을 다물이라고 한다고 하였지만 민간어원에 지나지 않는다. ‘다물’은 고구려가 정통을 잇고자 하는 나라의 첫 임금의 이름이다. 규원사화를 보자.
乙亥歲, 王儉奧婁門元年. 遷都樂浪忽, 使眞番侯監舊都.
을해년(BC 1342)은 오루문 왕검의 원년이다. 도읍을 낙랑홀로 옮기고 진번 제후를 시켜 옛 도읍을 감독하게 하였다.
戊子歲, 王儉麻勿元年. 眞番侯鄒咄入爲龍加. 南巡至唐莊京, 遂崩于阿斯達, 在位八歲. 眞番侯立, 王儉弟多勿.
무자년(BC 1285)은 마물 왕검의 원년이다. 진번 제후 추돌을 들게 하여 용가로 삼았다. 남쪽으로 순행하다가 당장경에 이르러 마침내 아사달에서 세상을 떠나니 임금자리에 있은 지 8년 만 이었다. 진번 제후가 보위에 올랐는데 임금의 아우인 다물(多勿)이다.
언뜻 보면 마물과 다물은 이름이 비슷하여 아우
같지만 둘 다 ‘물’로 끝나기 때문에 아우라고 덧붙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진번의 제후가 단군조선의 정권을 빼앗은 것이다. 이 때는
마물 왕검 원년 기원전 1285년으로 단군조선이 건국된 지 1048년이 되는 해로서 동국통감론(東國通鑑論),
응제시주(應製詩註), 해동역사에 기록된 단군의 치세기간과 일치한다. 한편 제왕운기에는 단군의 치세가 1038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규원사화에 따르면 단군조선 건국 10년 만에 도읍을 우수홀에서 평양으로 옮겼는데 이 기간을 감안하면 역시 단군의 치세기간과
일치한다. 즉, ‘다물’이란 고대 조선의 정권이 단군조선에서 진번조선으로 넘어가게 했던 인물의 이름이다. ‘다물도’로 삼았다
함은 진번조선이 단군조선의 도읍을 차지하여 패권을 잡은 것처럼 송양을 굴복시킴을 부여와 옥저와 예맥과 개마국 등 모든 나라를
빼앗아 옛 진번조선의 영토를 다시 만드는 시발점으로 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한다면 삼족오는 까마귀가 아니라 제비일 가능성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