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斷論

창조사학과 규원사화의 홍수 기록 본문

쉰소리

창조사학과 규원사화의 홍수 기록

부르칸 2012. 1. 15. 06:37
기독교성경에도 있는 홍수에 대한 기록이 규원사화에 보인다.
御國三十餘年, 正値洪水, 浩波溜天, 懷襄遼滿之野
나라를 다스린 지 30 여년 만에 홍수를 만났는데, 엄청난 파도는 하늘까지 치솟아 요만(遼滿)의 들녘을 품으며 올라서니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홍수가 걷히고 난 뒤에 백성들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하여 辰과 弁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夫餘之平南夷也, 洌水以南, 完服王化, 以故靑丘之民, 得漸遷居, 及洪水旣平, 南渡者益多. 於是南夷之人, 幷沾於神化, 遂變其俗, 後之辰.弁諸族, 皆是也.
부여가 남쪽의 오랑캐(夷人)들을 평정하니 열수(洌水)의 남쪽은 완전히 왕의 교화에 복종하게 되었으며, 그 까닭에 청구의 백성들이 점차 옮겨가서 살게 되었고, 홍수가 완전히 다스려진 뒤로는 남쪽으로 넘어가는 자가 더욱 많아졌다. 이로말미암아 남쪽의 오랑캐(夷人)들도 함께 神의 교화에 물들어 마침내 그 풍속이 변화하였으니, 후의 진(辰)과 변(弁)의 뭇 부족들이 모두 그들이다.


왜 홍수가 끝나고 남쪽으로 이동하는 자들이 많아졌을까?

창조사학에서 말하는 홍수

기독교성경에서 말하는 바를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창세때에 물은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궁창 위의 물이고 또하나는 궁창 아래의 물이다.
홍수 이전에 사람들은 채식만 했다.
하지만 홍수가 일어나고난 뒤에 사람들은 육식을 허락받았으며 추위와 더위에 고생해야만 했다. 
창조사학자들은 이를 두고 이렇게 해석한다.
궁창 아래의 물은 바다와 강이고 궁창 위의 물은 마치 온실의 비닐과 같았다.
홍수이전에 물들이 지구 위를 둘러싸고 있어서 지구 전체가 계절의 변화가 심하지 않고 위도에 따른 기온차도 크지 않아 1년 내내 먹을 만한 채소와 과일들이 넘쳐났으며 추위와 더위도 없었고 습도도 적당히 유지되었다. 
성경에 기록된 홍수란 비가 내린것이 아니라 궁창 위의 물이 쏟아져 내린 것이다.
홍수이후로부터 습도도 유지 안되고 계절의 변화가 생겼고 위도에 따른 연평균기온의 차이가 생겼다. 
겨울에는 먹을것이 모잘라 육식을 할수 밖에 없어서 여호와가 이를 허락했다. 
이러한 창조사학자들의 해석을 바탕으로 규원사화의 홍수이후 기록을 해석한다면 참 그럴듯 하다.
홍수이전에는 지구는 물로 둘러싸인 온실이라서 평양도 지방은 그렇게 춥지 않았다. 
하지만 홍수가 일어나 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물이 내려앉고 겨울에 너무 추워 살수가 없어지자
따뜻한 새로운 땅을 찾아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경상도 지방에 안착했던 것이고
이들이 삼국지에 말하는 진한과 변한 사람들이다...
모두 개척하는 마음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
19세기 새로운 땅을 찾아 만주로 떠난 대부분의 사람들도 경상도 사람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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