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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斷論
한서지리지 此自是險瀆의 올바른 해석 본문
한서 지리리의 요동군에 왕검성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신찬과 응초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서로 분분하다.
그 해석을 찬찬히 따져보다..
요동군(遼東郡) 험독현(險瀆縣)이 있는데 주석은 다음과 같다.
應劭曰, 朝鮮王滿都也, 依水險, 故曰險瀆.
臣瓉曰, 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 此自是險瀆也.
師古曰, 瓚説是也.
응소(應劭)을 말을 해석해보면 이렇다.
조선의 임금 滿(만)의 도읍이다. 물이 험함에 의지하였으므로 험독이라 하였다.
이는 요동군 험독현이 위만조선의 도읍이라고 말한 것으로서 많은 재야학자들이 위만조선의 도읍을 정하는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신찬(臣瓉)의 말을 해석해 보면 이렇다.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었다. 이곳이(此, 즉 낙랑군 패수의 동쪽)이 원래의(自是) 험독이다.
此는 항상 '이것' 또는 '이곳'을 뜻하므로 본문의 요동군험독현이 아니라 신찬이 말한 낙랑군 패수의 동쪽을 말한다.
自是는 naturally 또는 of course의 뜻으로 原來是의 뜻이 된다.
위만조선은 도읍을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정하고 험독현이라 하였으며 城을 왕검성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낙랑군이 고구려로 넘어가자 낙랑군에 있던 험독현을 요동군으로 이치(移治)하여 한서지리지에 요동군 험독현이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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