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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斷論
삼국유사 정덕본 환국과 환인 본문
삼국유사에 기록된 “昔有桓因[謂帝釋也]석유환인위제석야”은 판본에 따라 “昔有桓囯[謂帝釋也]석유환국위제석야”으로 적기도 하였다.
여기서 帝釋(제석)은 곧 하느님을 말하는 것인데 어떻게 桓囯(환국)이라고 해놓고 이를 하느님이라고 주석하였을까?
민족과 국가를 팔아먹기 위하여 역사를 연구하는 도적떼들은 삼국유사의 “囯”은 틀렸고 因이 맞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논거는 아래와 같다.
- 삼국유사 전반에 걸쳐서 國을 이체자인 囯으로 쓴 곳은 없으므로 이는 필사본에 因의 이체자인 “囙”으로 된 것을 囯으로 잘못 인식하여 판각한 것이다.
- 필사본의 因의 이체자인 (口+士)를 잘못 인식하여 囯으로 판각한 것이다.
- 桓囯을 帝釋이라고 주석하는 것은 문맥의 흐름상 불가능하다.
- 삼국유사에 “서자 환웅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자 했다. 아버지가 그 뜻을 알고 삼위태백산을 내려다 본즉 그곳이 과연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만한 곳이라”라고 하였으므로 桓囯이라고 보면 서자와 아버지의 해석이 매끄럽지 못하다.
이제 위 네 가지 주장들은 매국사도(賣國史盜)들이 「丸仁國(환인국)」를 부정하기 위한 논거이다. 이제 하나씩 반박해 보자.
1. 囙과 囯은 삼척동자라도 구분할 수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판각하는 자들이 아무리 문맹이라 할지라도 囙과 囯를 구분 못할 것인가?
이는 초등학생들에게 囙을 판각하라고 하더라도 囙으로 판각할 것이요 囯을 판각하라고 하더라도 囯으로 판각할 것이다.
이 두 글자는 삼척동자가 글자를 그려가며 필사하더라도 분별할 수 있는 글자이다
한편 매국사도(賣國史盜)들은 삼국유사에서 國을 이체자인 囯로 쓴 일이 없으므로 원본 혹은 필사본의 囯은 분명 國이 아닌 다른 글자였으며 그 다른 글자는 바로 囙이라고 하고 있다. 이들의 논리대로 다시 반론하면 삼국유사 전체에 걸쳐서 因을 囙으로 쓴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因자는 因으로 썼지 囙으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囯이라는 글자의 원래 형태가 因의 이체자인 囙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모순에 빠진 주장이며 자신들의 논리에 자신들의 주장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이들은 학자가 아니라 매국사도(賣國史盜)라고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들은 있지도 않은 桓囙을 만들어 桓因을 주장하고 있으니, 만약 桓因만 맞고 桓國이 틀렸다면 桓囙으로 된 판본을 보여야 하지만, 그러나 桓囙으로 기록된 삼국유사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매국사도들의 이러한 주장은 틀렸다.
더군다나 桓因으로 된 삼국유사를 보면 因안의 大자는 가필된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표1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삼국유사 중에서 청구기호가 “한古朝53-가11”인 판본에 존재하는 가필된 因과 가필되지 않은 因을 비교하기 위하여 昔有桓因이라고 된 구절과 다른 구절에서 因이 나타나는 몇 개만 골라온 것이다. 표1을 보면 昔有桓因의 因안에 있는 大는 다른 因에 있는 大와 비교하여 볼 때에 굵은 것을 알 수 있고 因이라고 고쳐지기 전에 원래 글자의 흔적이 확연하게 보인다. 반면 가필되지 않은 因이라는 글자는 아주 선명하게 因이라고 알아 볼 수 있다. 따라서 昔有桓因의 因은 원래 다른 글자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표1. 가필된 因과 가필되지 않은 因의 비교
변조되기 전의 因은 과연 무슨 글자였을까? 변조된 因이라는 글자를 자세히 보면 大자처럼 쓰여진 위로 羊자의 윗부분에 있는 두 점처럼 생긴 것이 보인다. 이는 가필되기 전의 글자가 囙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렇다면 口안에 점 두 개가 들어간 글자는 어떤 글자가 있을까? 이러한 글자는 囶(口+八+土)과 圀(口+八+方)이 있는데 모두 뜻이 “나라”이고 음이 “국”으로서 國의 이체자이다. 그렇다! 원본에서는 桓國을 桓囶이라고 적은 것인데 囶라는 글자가 因과 비슷하므로 因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한자를 좀 아는 자들이 필사할 때에는 囶을 囯으로 필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桓國으로 적힌 삼국유사 판본이 정말 존재하는가? 그림2는 삼국유사 정덕본인데 昔有桓囯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囯은 國의 이체자이다. 따라서 桓國이 옳은 것이며 桓因은 후대에 가필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역사적으로 桓國만 옳고 桓因은 틀렸다는 말이 아니며 이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다시 이야기 하겠다.
그림 1. 삼국유사 정덕본. 昔有桓囯라고 적혀있다
2. (口+士)는 因의 이체자가 아니다
매국사도(賣國史盜)들은 주장하기를 因의 이체자인 (口+士)를 사용하여 桓(口+士)으로 적혀있던 것인데 판각하는 자가 (口+士)이라는 글자를 몰라서 囯으로 적었다고 한다.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완전히 틀렸다.
《御定康熈字典》備考
(口+士)五音篇海音墋
(口+士)은 《오음편해(五音篇海)》에서 말하기를 음이 참(墋)이라고 하였다
(口+士)은 因(인)자가 아니라 음이 “참”이다. 그런데 어떻게 (口+士)(참)이 因(인)이 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주장은 성립될 수 없으며 틀린 것이다.
설사 (口+士)이 因의 이체자라고 해도 그들의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이들 매국사도(賣國史盜)는 민족과 국가를 팔아먹자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논지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논거는 “원래 필사본 혹은 원본에 (口+士)으로 되어 있었는데 (口+士)이 因의 이체자인지 몰랐기에 囯으로 잘못보고 판각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논리를 그대로 사용하여 반론을 하면 “원본 혹은 필사본은 囯으로 되어 있었는데 囯을 (口+士)로 잘못보고 (口+士)의 정자체인 因으로 판각하였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매국사도들은 “과학적 결론을 내릴 때에는 가능한 모든 가설을 세우고 각각의 가설이 맞는지 증명한다”는 단순한 과학적 방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원래의 사본이 囯일 가능성은 배제하고 桓因이 맞다는 결론만 내리기 위하여 가설도 그 결론을 내리기 위한 한 가지만 세웠고 또한 그 한 가지 가설만을 이용하여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틀렸다.
한편 어떤이는 삼국유사의 因은 口+士(선비 사)가 아니라 口+土(흙 토)라고 어거지를 부리고 있다.
설사 대만에서 발행한 이체자자전에 口+土가 因의 이체자라고 나올지라도 이는 분명히 틀린 것을 알 수 있다. 한자는 상형문자인 동시에 뜻글자이다. 뜻이 다른 글자가 결합하여 다른 뜻을 갖는 글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土은 흙이다. 즉, 토지이다. 그리고 口은 사방을 에워싸서 두른 곳이다.
땅을 사방으로 두른 곳이 무엇인가? 그것은 國이다.
어찌 口와 土가 합쳐져서 因이 되겠는가?
口+土라는 글자는 앞서 말한 囶(口+八+土)의 변형이며 國의 이체자이다.
3. 제석(帝釋)과 환국(桓國)의 해석
윤내현 교수는 고조선연구에서 “지 리 비정을 할 때에는 자신이 그 대상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여야 선입관을 버린 옳은 해석을 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서로 다른 두 사료가 다른 기록을 하고 있을 때에는 어느 한쪽이 틀렸다는 것이 명확하다고 증명되기 전에는 두 가지 다른 기록을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하였다. 환국(桓國)과 환인(桓因)의 문제도 그러하다. 桓因으로 기록된 것도 있고 桓國으로 기록된 것도 있는데 매국사도(賣國史盜)들은 이미 桓國은 틀렸고 桓因이 맞는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그들의 결론은 편협한 쪽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桓因과 桓國 중에 무엇이 맞는가?
필자는 둘 다 맞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桓因으로 기록된 책도 있고 桓國으로 기록된 책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삼국유사의 桓因은 비록 가필된 것이긴 하지만 桓因과 桓國이 모두 존재하며, 표2를 보면 《藥泉集》第二十九〈雜著 東史辨證〉과 《修山集》卷之十二〈東史志 神事志〉에도 桓國으로 쓰고 있다.
표2. 약천집(藥泉集)과 수산집(修山集)에 기록된 昔有桓國
반면 제왕운기와 응제시주에는 桓因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말해 주는 것은 적어도 고려시대에는 桓因과 桓國이라는 용어가 서로 혼재해 있었고 桓國과 桓因을 둘 다 옳은 것으로 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해답은 환단고기에 있다.
《환단고기》
三聖密記云波奈留山之下有桓仁氏之國天海以東之地亦稱波奈留國也
삼성밀기(三聖密記)에서 파내류산(波奈留山)의 아래에 환인(桓仁)씨의 나라가 있는데 천해(天海)의 동쪽 땅이며 또한 파내류(波奈留) 나라라고도 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는 “桓因氏之國(환인씨의 나라)”[1]라고 하였다. 이를 줄여 “桓因國(환인국)”이라고도 쓰였을 것이며 이것을 더 줄여서 “桓國(환국)”이라고도 쓰였던 것이다. 한편 보통 朝鮮(조선)이라 하지 朝鮮國(조선국)이라고 하지 않으며 高句麗(고구려)라고 하지 고구려국(高句麗國)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桓因國의 國을 생략하여 나라이름을 그냥 “桓因”이라고 하였을 것이며 여기서 桓因이란 호칭이 아니라 국명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민족 최초의 나라이름은 “하느님”이었는데 천신(天神)을 나타내는 말인 “하느님”과 같았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큰 혼동을 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기본으로 하여 문제가 되는 삼국유사 구절을 다시 해석하여보자.
昔有桓因[謂帝釋也]
옛날에 桓因(환인)이라는 나라가 있었다[桓因(환인)이란 帝釋(제석) 즉 하느님이란 뜻이다].
昔有桓囯[謂帝釋也]
옛날에 桓囯(환국)이 있었다[환국이란 나라이름은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이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매국사도들은 이러한 역사를 해석할 능력이 모자라므로 桓國은 틀렸다고만 하였지만 國의 쓰임새와 우리민족의 천손사상을 알고만 있다면 충분히 해석이 가능한 구절인 것이다.
즉,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는 엄밀히 말하면 「丸仁國(환인국)」이다. 그런데 불교가 융성하면서부터 丸仁國(환인국)을 고쳐 桓因國(환인국)으로 적기에 이르렀다. 또한 國이란 글자는 원래 제후국에 붙이는 것이므로 國을 생략하고 桓因이라고 적었던 것이다. 하지만 國을 빼놓고 보니 桓因이 나라이름인지 하느님을 뜻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桓因國의 因자를 생략한 桓國이라는 명칭도 혼재하게 되었다. 因은 원래 “님”에 해당되므로 桓國이라고만 적어도 “하늘나라”라는 의미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하에서 삼국유사에서는 桓國이라 하였고 제왕운기에서는 桓因이라고 적었던 것이지만 모두다 「丸仁國(환인국)」이다.
4. 서자 환웅(桓雄)과 그의 아버지
매국사도(賣國史盜)들은 “桓因(환인)을 桓國(환국)으로 해석하면 그 뒷문장의 庶子(서자)와 아버지가 해석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고대사상과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우리민족은 자신들 하나하나가 모두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천손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간인 환웅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환웅 역시 하느님이 되어야하지만 환웅은 분명 인간이었다. 그래서 환웅을 하느님의 서자라고 표현한 것이다. 신(神)의 적자(嫡子)는 신(神)이고 신(神)의 서자(庶子)는 사람인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신의 적자는 신이고 신의 서자는 사람인 간단한 진리를 몰라 매국사도들은 삼국유사를 해석하지 못했던 것이다.
즉, 삼국유사에 나타난 桓因과 桓雄과 壇君王儉의 탄생에 대한 기록은 역사적 사실을 설화로 기록한 것이기에 桓因國(환인국)을 桓因(환인)으로, 桓因國(환인국)의 백성을 天界(천계)에서 監群(감군)으로 있는 桓因氏(환인씨)의 서자(庶子)로, 天山(천산)에서 太伯山(태백산)으로의 이동을 하늘에서 땅으로의 강림으로, 오직 하늘이 주는 桓雄(환웅)만의 절대적 권력을 천부인(天符印)으로 나타낸 것이다.
지나식의 역사 서술 체재인 기전체와 편년체 등에 익숙한 자들이 이러한 설화를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사를 그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설화로 된 기록을 쉽게 풀어서 해석해보자.
昔有桓國[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옛 날에 환인국이 있었다. (환인국의 백성은 모두 하느님의 아들이므로 신(神)의 서자(庶子)라고 생각했었는데) 하느님의 서자(庶子) 환웅이 온 천하와 세상을 자신의 손에 거머쥘 뜻을 자주 품었었다. 환웅은 그의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삼위와 태백을 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만 하였다. 이에 하늘이 준 천부(天符)의 표식을 가지고 무리 3000을 이끌고 천산(天山)에서 태백산(太伯山) 신단수(神檀樹)의 터로 옮겨와 나라를 건국하니 이것이 바로 신불(神巿)이고 그를 환웅천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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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환단고기》에는 桓仁으로 되어 있지만 《삼국유사》에 나온 桓因과 桓囯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므로 桓因이라고 하였고 논지의 전개에는 큰 무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