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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11/08/07 (12)
獨斷論
평양지역 유물에서 나온 연호를 정리해보았다. 대략 始元 2년 BC 85부터 元興 3년 AD 404까지 나타나고 있다. 낙랑군 설치가 BC108년라고 하지만 군사를 들여놓은 후에 민간인들이 차지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리기 마련이다. 역시 낙랑군 축출이 AD313년이라고 하지만 군사력으로 중국 군대를 몰아낸 후에 중국의 민간인들이 다 빠져나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법이다. 아래 평양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의 연대로부터 그리고 군사력 축출과 민간인 축출이 시간차가 난다는 사실로부터 평양은 곧 중국의 낙랑군 지역임을 알 수 있다. 前漢 始元 昭帝 86 – 80 BC 地節 宣帝 69 – 66 BC 永光 元帝 43 – 39 BC 河平 成帝 28 – 25 BC 陽朔 成帝 24 – 21 BC 永始 成帝 16 – 13 BC 綏..
고대국어에는 'ㅎ'의 음가가 없었다는 주장을 하는 교수들이 많다. 역사를 처음 공부하면서 드는 의구심 가운데에 이런 주제에 해당되는 사항이 있었지만 그때에는 고대국어에 'ㅎ'가 없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의구심은 그저 의구심으로 끝나고 말았었다. 대개 지금 'ㅎ'으로 발음되는 음가가 고대에는 대개 'ㅋ'이었고 때때로 'ㅅ'이었단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머리에 생각나는데로 정리해보자. 아사달을 九月山이라 했다면서 九와 "아사"가 그 음이 비슷하다고 하였다(어디서 읽었는지는 까먹었음). 이제보니 九의 고대음가는 '아홉'이 아니라 "아순"와 비슷한 음가였다. "졸본"이라 쓰여져있기도 한 고구려 첫 도읍이 "흘승골성"이라고 했으니 고대국어에는 'ㅎ'이 없었으므로 우리 고대국가에서는 紇이 "흘"이 아니라 "슬"이니 ..
대개 치우가 탁록에서 살해당했다고 알고 있는데 아주 다르게 치우를 청구에서 죽였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周易函書約存卷八 蚩尤出自羊水入肱入趾䟽首登九淖以伐空桑黃帝殺之于青丘 繹史卷五 歸藏蚩尤出自羊水入肱入趾疏首登九淖以伐空桑黃帝殺之於青丘 管城碩記卷二十 蚩尤作亂歸藏啓筮曰蚩尤出自羊水登九淖以伐空桑黄帝殺之於青丘 廣博物志卷九 蚩尤出自羊丘入肱入趾疏首登九淖以伐空桑黄帝殺之於青丘 御定淵鑑函卷五十五 歸藏啓筮曰蚩尤出自羊水入股入趾疏首登九淖以代空桑黄帝殺之於青丘 모두다 똑같은 출처군요 歸藏의 啓筮... 해동역사에서는 이걸 인용하면서 청구는 齊의 밖에 있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기록은 여러가지가 있으니 확실한 유적 유물이 나올때까지 한가지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 황제(黃帝)가 치우(蚩尤)를 청구에서 죽이고 강고곡(棡鼓曲) 10장..
보통 "한"이라 하면 그 뜻을 多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으므로 주의해야한다. 계림유사를 보면 漢으로 음차한 것 가운데 白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白米曰漢菩薩 이건 "흰쌀"을 漢菩薩(한보살)로 음차했다는 말이다. 중세국어 표기를 빌리자면 "흰"은 ""이고 "쌀"은 ""이므로 ""을 漢(한)로 음차하고 ""을 菩薩로 음차했음을 알수 있다. 銀曰漢歲 여기선 "은(銀)"을 漢歲(한세)라고 음차했는데 오늘날말로 "흰쇠"이며 중세국어 표기를 빌리면 역시 "쇠"임을 알수 있다. 즉, 漢은 白의 뜻으로도 쓰였다. 그리고 현대국어의 'ㅎ'의 음가는 고대국어에서 'ㅅ'과 'ㅋ(ㄱ)' 그리고 심지어는 'ㅂ(ㅍ)'에서 분립되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漢으로 음차된 고대국어의 지명이나 인명..
순우리말 가루 - 딱딱한 물건을 보드라울 정도로 잘게 부수거나 갈아서 만든 것. 거루 - 돛이 없는 작은 배. 거룻배 고루 - 차이가 없이 엇비슷하거나 같게 골고루 - 고루고루 그러루 - 대게 정도나 형편따위가 그러한 모양 그루 - 그루터기. 풀이나 나무 따위의 아랫동아리. 또는 그것들을 베고 남은 아랫동아리. 나루 - 강이나 내,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일정한 곳. 두루 - 골고루 빠지없이 마루 - 등성이를 이루는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 모루 - 대장간에서 불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 벼루 - 먹을 가는 데 쓰는 문방구. 벼루 - 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벼랑 부루 - 한꺼번에 없애지 아니하고 오래가도록 늘여서. 시루 - 떡이나 쌀 따위를 찌는 데 쓰는 둥..
이 글은 우리민족의 사라진 낱말인 "단"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함이다. "단"이란 현대의 우리말로 "땅" 혹은 "영토" 혹은 "나라"를 뜻한다. 단군조선의 나라이름인 辰檀(센단), 발해의 나라이름인 震旦(센단), 遼라고도 불리었던 契丹(셜단), 위 모두 "단"을 붙여 나라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런 "단" 계열의 지명이나 국명은 대체로 呑(탄), 旦(단), 頓(돈), 丹(단), 屯(둔), 檀(단) 등으로 나타나며 이번 첫 번째 조사에서는 가장 많이 보이는 呑 계열의 지명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삼국사기 * 경(广+京)谷縣, 一云首乙呑 (경곡현은 또한 수을탄이라고도 한다) 경(广+京)은 음이 “경”이다. 강희자전에 뜻이 倉(곳집)이라고 하였다. (广+京)의 訓讀(훈독)이 首乙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谷의 훈..
1. 高는 음차인가 漢譯인가? 엄밀히 말하면 훈음병차이다. 高句麗라는 국호는 첫도읍 紇升骨(흘승골)을 따라 지었다. 우리옛말에 /h/의 음가가 없었으므로 紇은 '슬'이요 升은 사이시옷을 나타내며 骨은 그냥 '고을'이다. 즉 紇升骨은 '슰골'을 음차한 것이고 이는 오늘날말의 '수릿골'에 해당된다. '수릿골'이란 달리말하면 '꼭대기'고을인데 '대기'는 '푼수대기'와 같이 그저 관습상 붙는 접미어요 高의 뜻을 갖는 우리말은 '꼭'이며 중세국어에서는 '곡'이었다. 여기에 요즘은 대개 '멍텅구리'와 '아구리' 같은데서 안좋은 의미로 많이 쓰이는 파생접사 '구리'를 붙여 나랏니름 '곡구리' 즉 '고구리'를 만들었지만 '구리'는 고대에 일반적인 파생접사였다. 2. 고구려일까 고구리일까? 이걸가지고 쓸데없이 싸우는 이..
당서(唐書)는 '고구려에서 箕子可汗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당서는 '기자가한신'이라 하였고 구당서는 '기자신'과 '가한신'으로 보았다. 이병도는 기자조선시대의 유습이라고 하였지만 箕子可汗의 箕子는 우리가 아는 그 箕子가 아니라 '극한'을 나타내는 관형어일 가능성은 없을까? 1) 우리민족의 최고지도자의 호칭에 대한 규칙 신라는 마립간이라 하였다. 일반군장호칭 '간'에 '마립' 즉 宗의 뜻을 붙여 최고지도자임을 나타내었다. 거서간이란 말도 일반군장호칭 '간'에 '거서'를 붙인것인데 '거서'란 上의 뜻이다. 청주시 산성동에는 '것대산'이 있는데 '거질대산'이라고 하기도 하고 '상령산'이라고 하기도 한다. 옛 문헌에 居次大山(거차대산) 또는 居叱大山(거질대산)이라고 썼으니 이는 모두 "것대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