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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조선사독단/오국사 (15)
獨斷論
우리나라의 사료가 너무 부족하여 가끔가다 헷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국은 제가 알기로 앞쪽을 남쪽으로 보는 습성이 있다고 하죠. 우리나라도 고려중기와 중세조선을 지나면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앞쪽을 남쪽으로 보는 습성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대에 앞쪽을 북쪽으로 보았던 것 같고, 그렇기에 하평양(下平壤)이 남평양(南平壤)이 되는 것입니다. (이하 글에서는 "앞쪽=위쪽"으로 봤다는 전제가 들어갑니다) 고구려 사람이 생각하는 앞쪽은 북쪽 고구려는 어떤 책력을 사용하였을까요? 해동역사에서 유환기문(游宦記聞)의 기록을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습니다.해동역사 권17 성력지 고려국에는 구집력(九執曆)이 있다. 그 법은 하늘은 왼쪽으로 돌고, 해와 달 역시 왼쪽으로 돈다. 하루의 밤과 낮은 해..
유리왕은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를 한다. 그 당시 국제적 성황으로 볼때 유리왕은 동부여를 피하여 서쪽으로 도읍을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당사료에는 국내성 즉 불이성이 북부여 땅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개 환도성과 국내성이 서로 인접하였다고 하지만, 이는 관구검이 새긴 不耐城과 국내성인 不而城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유리왕이 천도한 不而城과 관구검이 공격한 丸都城의 위치 不而城은 漢의 낙랑군 不而縣으로 생각된다. 그 위치를 살펴보면...新唐書 卷四十三下 志 第三十三下 自鴨淥江口舟行百餘里,乃小舫泝(溯)流東北三十里至泊汋口,得渤海之境。又泝(溯)流五百里,至丸都縣城,故高麗王都。又東北泝(溯)流二百里,至神州。 압록강 어귀에서 배로 100여리를 가고, 이내 작은 배를 타고 동북으로 3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 5부는 다음과 같다. 桓那部(환나부) 掾那部(연나부) 貫那部(관나부) 提那部(제나부) 沸流部(비류부) 중국사료에 나오는 고구려 5부는 대개 다음과 같다. 順奴部(순노부) 涓奴部(연노부, 消奴部로 적기도 하는데 삼국지를 따라 消奴部는 고려대상에서 제외시킨다.) 灌奴部(관노부) 絶奴部(절노부) 桂婁部(계루부) 내가 생각하기에 위 순서대로 동부 서부 남부 북부 내부이나 계루부의 말뜻은 중부가 아니다. i) 동부 桓은 현재 우리말 발음이 "환"이니 고대에는 'ㅎ'의 음가가 없었으므로 桓은 '환'이 아니라 '수안'으로 이를 중국사서에서 順으로 음차하였다. ii) 서부 삼국사기에서는 掾으로 쓰고 삼국지에서는 涓으로 적었으니 모두 발음이 '연'으로 같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후대의 사서에서 ..
1. 高는 음차인가 漢譯인가? 엄밀히 말하면 훈음병차이다. 高句麗라는 국호는 첫도읍 紇升骨(흘승골)을 따라 지었다. 우리옛말에 /h/의 음가가 없었으므로 紇은 '슬'이요 升은 사이시옷을 나타내며 骨은 그냥 '고을'이다. 즉 紇升骨은 '슰골'을 음차한 것이고 이는 오늘날말의 '수릿골'에 해당된다. '수릿골'이란 달리말하면 '꼭대기'고을인데 '대기'는 '푼수대기'와 같이 그저 관습상 붙는 접미어요 高의 뜻을 갖는 우리말은 '꼭'이며 중세국어에서는 '곡'이었다. 여기에 요즘은 대개 '멍텅구리'와 '아구리' 같은데서 안좋은 의미로 많이 쓰이는 파생접사 '구리'를 붙여 나랏니름 '곡구리' 즉 '고구리'를 만들었지만 '구리'는 고대에 일반적인 파생접사였다. 2. 고구려일까 고구리일까? 이걸가지고 쓸데없이 싸우는 이..
고구려말 三, 五, 七, 九들의 발음이 일본말과 닮았단다. 주장은 근거는 아마도 삼국사기 지리지일게다. 어디 한번 그 근거를 보자. 삼국사기 잡지 지리 고구려 우수주 三峴縣一云密波兮 삼현현은 달리 밀파혜라고도 한다. 삼국사기 잡지 지리 고구려 한산주 五谷郡一云于次呑忽 오곡군은 달리 우차탄홀이라고도 한다. (정덕본에는 弓次云忽) 삼국사기 잡지 지리 고구려 한산주 七重縣一云難隱別 칠중현은 달리 난은별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 잡지 지리 고구려 한산주 十谷縣一云德頓忽 (정덕본에는 德市頁忽) 십곡현은 달리 덕돈홀이라고도 한다.여기 3, 5, 7, 10이 다 모였다. 우선 한산주에 나온것부터 살펴보자. 五를 于次에 대응하니 이는 현대 일본말 いつ(이쯔, itsu)와 닮았고 七은 難隱에 대응하니 なな(나나, nana..
담로(擔魯)의 어원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백제의 지방행정조직을 말하는 것인지 백제가 국외에 설치한 일종의 식민지를 말하는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말은 말꼬리에 '로' 또는 '루'를 붙여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한다. 예전에 계루부의 어원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어떤 낱말에 '루'를 붙이면 '루' 앞에 붙은 낱말의 특성을 갖는 땅을 의미한다. 나루란 '내'에 있는 배를 타는 곳이고, 마루란 '마리'에 '루'를 붙인 말로서 산꼭대기가 되며, 벼루란 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벼랑이고, 돌모루란 돌로 둘려있는 산모퉁이를 말하고, 물모루란 시냇물이 흘러가다가 모가 져서 굽이도는 곳이고, 미루란 밋밋하게 널리 펼쳐져 있는 들이나 벌판 또는 등판이며, 솔모루란 소나무가 많이 있는 모퉁이를 말한다. 이와 같은 종류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