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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斷論
단기고사 전조선기 벌음 단군 28년에 심양태수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28년에 임금께서 심양태수(瀋陽太守)를 불러 이르시기를 “경(卿)이 심양을 지키면서부터 오늘까지 헐뜯는 말이 끊이지 않으나 내가 사람을 시켜 심양을 살피니, 밭과 들이 크게 개발되었으며, 백성은 잘 살고 소와 말이 많이 번식되었으니. 이것은 경이 내 좌우(左右) 신하에게 아첨하지 않은 까닭이라.”하시고 벼슬을 높이고 상을 주셨다. 청해태수(靑海太守)를 불러 이르시기를 “경이 청해를 지키면서 오늘까지 칭찬의 소리가 끊이지 않으나 내가 사람을 보내어 청해를 살펴보니, 밭과 들이 황폐해지고 백성은 가난하여 가축이 번식하지 않으니, 이것은 경이 내 주위 사람들에게 아첨하여 자랑했기 때문이라. 겉모양만 내는 사람은 세상이 다 미워하는데 하물며 ..
우리말로 된 제왕의 호칭을 한자어가 많아진 요즘에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왕이니 황제니 하는 것은 지나의 호칭이고 임금이니 왐검이니 가독부니 하는 것들은 우리의 호칭이지만 사대주의에 눈멀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모든 역사용어들을 지나의 것으로 바꾸어 놓았으므로 이제 고대사에 기록된 우리의 임금에 대한 호칭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자. 신채호선생님께서는 臣雲遣支(신운견지)는 틀렸고 臣雲新國(신운신국)이라는 나라이름으로 인하여 雲(운)자가 잘못 첨가된 말로서 臣遣支(신견지)가 제대로 된 이름이며 이는 “신크치”라는 의미라고 하셨지만 좀 틀린 것 같다. 어떤이들은 臣雲遣支報란 臣雲新國(신운신국)에서 신지를 칭할 때 遣支報(견지보)로 칭한다고 해석하고 있고, 본인도 이에 동의했었지만, 이것도 지금 생각해보니 틀린..
고조선의 위치를 알기 위하여 산해경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산해경에서는 이상하게도 조선이 바다에 있다고 했다. 東海之内,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 동쪽 해(海)의 안쪽과 북쪽 해(海)의 귀퉁이에 나라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조선(朝鮮)이다...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절대로 위 구절은 조선이 바다에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또한 위에서 말한 북해는 발해바다도 아니다. 만약 위 구절의 북해가 발해바다라면 동해는 어디란 말인가? 논리에 어긋난다. 산해경의 海를 알기 위해서는 산해경 전체 구조를 파악해 보아야만 한다. 산해경은 전체 18권으로 되어있는데 그 순서가 다음과 같다. 권1. 南山經; 권2. 西山經; 권3. 北山經; 권4. 東山經; 권5. 中山經 권6. 海外南經; 권7. 海外西經; 권8. 海..
이성계는 明의 황제에게 새로운 국가이름 후보로 회령과 조선을 들고 나왔다. 회령은 이성계 고향이고... 조선은 왜 들고 나왔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군사화의 와전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단군사화의 檀은 神이다. 삼일신고.. 한자로 三一神誥로 쓰지만 정확히 三一誥로 써야 한다. 하늘님을 나타내는 글자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조상의 의미가 깊을때에는 神을 쓰고 해(日)를 상징할때에는 을 쓴다. 은 형성자로서 (示+旬)은 음을 나타내고 旦은 뜻을 나타낸다.
기독교성경에도 있는 홍수에 대한 기록이 규원사화에 보인다. 御國三十餘年, 正値洪水, 浩波溜天, 懷襄遼滿之野 나라를 다스린 지 30 여년 만에 홍수를 만났는데, 엄청난 파도는 하늘까지 치솟아 요만(遼滿)의 들녘을 품으며 올라서니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홍수가 걷히고 난 뒤에 백성들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하여 辰과 弁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夫餘之平南夷也, 洌水以南, 完服王化, 以故靑丘之民, 得漸遷居, 及洪水旣平, 南渡者益多. 於是南夷之人, 幷沾於神化, 遂變其俗, 後之辰.弁諸族, 皆是也. 부여가 남쪽의 오랑캐(夷人)들을 평정하니 열수(洌水)의 남쪽은 완전히 왕의 교화에 복종하게 되었으며, 그 까닭에 청구의 백성들이 점차 옮겨가서 살게 되었고, 홍수가 완전히 다스려진 뒤로는 남쪽으로 넘어가는..
드라마 뿌리깊은나무의 결말을 한번 짚어보자... 오늘 23회에서 세종대왕이 한참 고민하면서 써내려간것은 훈민정음 언해본이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다라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백셩이 니르고져할배 이셔도 제 뜯을 시러펴디 못할노미 하니라....내 이를 위하여 어엿비녀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맹가노니...사람으로하여 쉽게익혀 날로 쓰게 편한코져하게할 따름이니라...' 하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것이 있는데, 이는 1940년에 처음발견되었다.. 왜 훈민정음 해례본은 20세기에 드러서야 처음 알게되었는지 알수 없다.. 뿌리깊은나무 작가는 이를 염두해두고 24회를 마칠것 같다... 세종대왕은 소이가 없이 언해본을 만들고 반포하여 지금까지 전해내려오는 것이고... 소이는 겨우겨우 홀로 빠져나와 ..
한서 지리지 낙랑군條에 위만조선의 도읍이라고 생각되는 평양현이 없다. 신채호선생께서는 패수현이 바로 평양현이라고 하셨지만 너무 이두글자에 집착하지 않으셨나 싶다. 한서 지리지를 잘뜯어보면 위만조선의 도읍은 낙랑군 평양현이 아니라 낙랑군 험독현이었다. (어라 험독현이 요동군이 아니라 낙랑군에 있었다?) 前漢書卷二十八下 地理志第八下 遼東郡.. 險瀆 應劭曰朝鮮王滿都也依水險故曰險瀆臣瓉曰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此自是險瀆也師古曰瓚説是也 요동군..험독현 應劭는 험독이 조선의 임금 위만의 도읍이고 강물의 험함에 의지하였기에 험독이라고 이름하였다고 말했다. 臣瓚은 왕검성이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으며 이것이 원래 험독이라고 했다. 師古는 瓚의 설명이 맞다고 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건 此自是險瀆이다. 사전에 설명한 각각의 ..
북사(北史) 고구려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사람들은 모두 머리에 절풍(折風)을 쓴다. 그 모양은 고깔(弁)과 같은데, 사인(士人)은 두개의 새깃을 더 꽂는다. 귀한 사람들은 그 관(冠)을 蘇骨(소골)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자주빛 비단으로 만들어 금이나 은으로 장식한다. www.history.go.kr에서 퍼옴 주서에는 골소라고도 하였다. 소골(蘇骨)은 아래와 같이 고구려 사람이 쓰던 것으로 보통 텔레비같은데서는 신라 화랑들이 하고 다닌다. 蘇骨을 '속곳'을 음차하였고 이는 '솟은 갓'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1] 骨의 종성은 'ㄹ'이고 현대중국어에서도 gu로 발음하므로 종성이 'ㄷ'으로 대표되는 '곳'이라 해석하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다. 우리나라는 관직에 있는 것을 '벼슬'한다고 했음으므로 蘇骨이라고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