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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斷論
한서 주석에 이런게 있다. 應劭曰北貉國也...중략...師古曰貉在東北方三韓之屬皆貉類也 응소는 북맥이 나라라고 했다...중략... 사고는 맥이 동북쪽에 있고 대개 삼한에 속한 것들은 맥의 종류라고 했다. 자치통감 주석도 똑같이 베꼈지만 뒤에 몇구절이 더 있다. 應劭曰北貉國也...중략...師古曰貉在東北方三韓之屬皆貉類也葢貉人及燕皆來助 진한은 고조선 유민인데... 맥이라 할 수 있을까나? 그렇지 않다.. 신라인을 중국인들은 예맥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변한은 한반도 토착민인것 같으므로 맥은 아니라 믿는다... 남은건 마한인데... 삼국사기에 고구려가 마한과 예맥을 이끌고 현토를 공격했다는 기록을 본것 같다... 김부식은 이것을 잘 이해 못하여서 마한은 이미 망했는데 고구려랑 왜 현토를 포위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 5부는 다음과 같다. 桓那部(환나부) 掾那部(연나부) 貫那部(관나부) 提那部(제나부) 沸流部(비류부) 중국사료에 나오는 고구려 5부는 대개 다음과 같다. 順奴部(순노부) 涓奴部(연노부, 消奴部로 적기도 하는데 삼국지를 따라 消奴部는 고려대상에서 제외시킨다.) 灌奴部(관노부) 絶奴部(절노부) 桂婁部(계루부) 내가 생각하기에 위 순서대로 동부 서부 남부 북부 내부이나 계루부의 말뜻은 중부가 아니다. i) 동부 桓은 현재 우리말 발음이 "환"이니 고대에는 'ㅎ'의 음가가 없었으므로 桓은 '환'이 아니라 '수안'으로 이를 중국사서에서 順으로 음차하였다. ii) 서부 삼국사기에서는 掾으로 쓰고 삼국지에서는 涓으로 적었으니 모두 발음이 '연'으로 같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후대의 사서에서 ..
평양지역 유물에서 나온 연호를 정리해보았다. 대략 始元 2년 BC 85부터 元興 3년 AD 404까지 나타나고 있다. 낙랑군 설치가 BC108년라고 하지만 군사를 들여놓은 후에 민간인들이 차지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리기 마련이다. 역시 낙랑군 축출이 AD313년이라고 하지만 군사력으로 중국 군대를 몰아낸 후에 중국의 민간인들이 다 빠져나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법이다. 아래 평양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의 연대로부터 그리고 군사력 축출과 민간인 축출이 시간차가 난다는 사실로부터 평양은 곧 중국의 낙랑군 지역임을 알 수 있다. 前漢 始元 昭帝 86 – 80 BC 地節 宣帝 69 – 66 BC 永光 元帝 43 – 39 BC 河平 成帝 28 – 25 BC 陽朔 成帝 24 – 21 BC 永始 成帝 16 – 13 BC 綏..
고대국어에는 'ㅎ'의 음가가 없었다는 주장을 하는 교수들이 많다. 역사를 처음 공부하면서 드는 의구심 가운데에 이런 주제에 해당되는 사항이 있었지만 그때에는 고대국어에 'ㅎ'가 없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의구심은 그저 의구심으로 끝나고 말았었다. 대개 지금 'ㅎ'으로 발음되는 음가가 고대에는 대개 'ㅋ'이었고 때때로 'ㅅ'이었단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머리에 생각나는데로 정리해보자. 아사달을 九月山이라 했다면서 九와 "아사"가 그 음이 비슷하다고 하였다(어디서 읽었는지는 까먹었음). 이제보니 九의 고대음가는 '아홉'이 아니라 "아순"와 비슷한 음가였다. "졸본"이라 쓰여져있기도 한 고구려 첫 도읍이 "흘승골성"이라고 했으니 고대국어에는 'ㅎ'이 없었으므로 우리 고대국가에서는 紇이 "흘"이 아니라 "슬"이니 ..
대개 치우가 탁록에서 살해당했다고 알고 있는데 아주 다르게 치우를 청구에서 죽였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周易函書約存卷八 蚩尤出自羊水入肱入趾䟽首登九淖以伐空桑黃帝殺之于青丘 繹史卷五 歸藏蚩尤出自羊水入肱入趾疏首登九淖以伐空桑黃帝殺之於青丘 管城碩記卷二十 蚩尤作亂歸藏啓筮曰蚩尤出自羊水登九淖以伐空桑黄帝殺之於青丘 廣博物志卷九 蚩尤出自羊丘入肱入趾疏首登九淖以伐空桑黄帝殺之於青丘 御定淵鑑函卷五十五 歸藏啓筮曰蚩尤出自羊水入股入趾疏首登九淖以代空桑黄帝殺之於青丘 모두다 똑같은 출처군요 歸藏의 啓筮... 해동역사에서는 이걸 인용하면서 청구는 齊의 밖에 있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기록은 여러가지가 있으니 확실한 유적 유물이 나올때까지 한가지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 황제(黃帝)가 치우(蚩尤)를 청구에서 죽이고 강고곡(棡鼓曲) 10장..
1. 高는 음차인가 漢譯인가? 엄밀히 말하면 훈음병차이다. 高句麗라는 국호는 첫도읍 紇升骨(흘승골)을 따라 지었다. 우리옛말에 /h/의 음가가 없었으므로 紇은 '슬'이요 升은 사이시옷을 나타내며 骨은 그냥 '고을'이다. 즉 紇升骨은 '슰골'을 음차한 것이고 이는 오늘날말의 '수릿골'에 해당된다. '수릿골'이란 달리말하면 '꼭대기'고을인데 '대기'는 '푼수대기'와 같이 그저 관습상 붙는 접미어요 高의 뜻을 갖는 우리말은 '꼭'이며 중세국어에서는 '곡'이었다. 여기에 요즘은 대개 '멍텅구리'와 '아구리' 같은데서 안좋은 의미로 많이 쓰이는 파생접사 '구리'를 붙여 나랏니름 '곡구리' 즉 '고구리'를 만들었지만 '구리'는 고대에 일반적인 파생접사였다. 2. 고구려일까 고구리일까? 이걸가지고 쓸데없이 싸우는 이..
당서(唐書)는 '고구려에서 箕子可汗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당서는 '기자가한신'이라 하였고 구당서는 '기자신'과 '가한신'으로 보았다. 이병도는 기자조선시대의 유습이라고 하였지만 箕子可汗의 箕子는 우리가 아는 그 箕子가 아니라 '극한'을 나타내는 관형어일 가능성은 없을까? 1) 우리민족의 최고지도자의 호칭에 대한 규칙 신라는 마립간이라 하였다. 일반군장호칭 '간'에 '마립' 즉 宗의 뜻을 붙여 최고지도자임을 나타내었다. 거서간이란 말도 일반군장호칭 '간'에 '거서'를 붙인것인데 '거서'란 上의 뜻이다. 청주시 산성동에는 '것대산'이 있는데 '거질대산'이라고 하기도 하고 '상령산'이라고 하기도 한다. 옛 문헌에 居次大山(거차대산) 또는 居叱大山(거질대산)이라고 썼으니 이는 모두 "것대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