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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斷論
제목이 좀 수상적지만 “대가리”라는 단어와 “달수”라는 이름은 단군조선이 건국되기 전부터 써오던 유서 깊은 말이다. 1) 대가리에 대하여 삼국유사에 적혀 있는 桓因(환인)과 桓雄(환웅)은 모두 丸仁과 丸雄이어야만 한다. 여기서 쓰인 丸의 뜻은 “동글(둥글)”인데 “동글”과는 다른 널따랗고 무한한 뜻을 담아 “”이라는 파생어가 생겨났다. 이는 하늘을 뜻하는 고대어이다. 이것의 증거는 상고시대에 우리와 같은 민족이었던 흉노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前漢書》卷九十四上〈匈奴傳〉第六十四上 單于姓攣鞮氏其國稱之曰撐犁孤塗單于匈奴謂天為撐犁謂子為孤塗單于者廣大之貌也言其象天單于然也 單于의 성씨는 攣鞮(련제)이다. 흉노에서 그를 칭하여 이르기를 撐犁孤塗(탱리고도)單于라고 한다. 흉노는 하늘을 撐犁(탱리)라고 하고 아들을 ..
우리 역사상 “부여”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가 대략 4개가 있다.하나는 단군조선이 그의 아들 부여에게 봉한 옛 부여가 있고(이하 옛부여 통칭)둘째는 해모수가 건국했다는 북부여가 있으며셋째는 해부루가 북부여 땅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동부여가 있으며넷째는 백제가 남한(南韓) 땅으로 이동하여 국명을 바꾼 남부여가 있다.간혹 두 번째 북부여와 세번째 동부여를 서로 같은 나라라 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부여를 잘못 이해한 까닭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해부루가 세운 부여의 이름은 동부여인데 고구려 북쪽에 있었기에 고구려 사람들이 북부여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이 이렇게 헷갈리는 이유는 북부여에 대한 기록이 삼국유사에 잠깐 나오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북부여와 동부여를 헷갈리기 기록하였으며 중국사서에는 북부여의..
삼국유사에 기록된 “昔有桓因[謂帝釋也]석유환인위제석야”은 판본에 따라 “昔有桓囯[謂帝釋也]석유환국위제석야”으로 적기도 하였다. 여기서 帝釋(제석)은 곧 하느님을 말하는 것인데 어떻게 桓囯(환국)이라고 해놓고 이를 하느님이라고 주석하였을까? 민족과 국가를 팔아먹기 위하여 역사를 연구하는 도적떼들은 삼국유사의 “囯”은 틀렸고 因이 맞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논거는 아래와 같다.삼국유사 전반에 걸쳐서 國을 이체자인 囯으로 쓴 곳은 없으므로 이는 필사본에 因의 이체자인 “囙”으로 된 것을 囯으로 잘못 인식하여 판각한 것이다.필사본의 因의 이체자인 (口+士)를 잘못 인식하여 囯으로 판각한 것이다.桓囯을 帝釋이라고 주석하는 것은 문맥의 흐름상 불가능하다.삼국유사에 “서자 환웅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
고수(沽水)를 현재의 백하(白河)라고 비정한다. 그러나 그렇게 비정하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르는데 그러한 사항들을 하나씩 정리해보고자 한다. 한서(漢書)에 나온 고수(沽水)代郡, 且如, 于延水出塞外, 東至寕入沽. 中部都尉治. 平舒, 祁夷水北至桑乾入沽. 莽曰平葆. 대군(代郡) 차여현(且如縣), 우연수(于延水)가 새(塞) 밖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흘러 (상곡군) 녕현(寕縣)에 이르러 고수(沽水)로 들어간다. 중부도위(中部都尉)가 다스린다. 평서현(平舒縣), 기이수(祁夷水)가 북쪽으로 흘러 상건현(桑乾縣)에 이르러 고수(沽水)로 들어간다. 왕망이 말하기를 평보라 했다. 위에 우연수와 기이수가 나온다. 보통 우연수는 영정하의 상류인 양하(洋河)로 비정된다. 그리고 기이수는 현재 상건하 지류인 현재의 울현(蔚縣..
유리왕은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를 한다. 그 당시 국제적 성황으로 볼때 유리왕은 동부여를 피하여 서쪽으로 도읍을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당사료에는 국내성 즉 불이성이 북부여 땅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개 환도성과 국내성이 서로 인접하였다고 하지만, 이는 관구검이 새긴 不耐城과 국내성인 不而城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유리왕이 천도한 不而城과 관구검이 공격한 丸都城의 위치 不而城은 漢의 낙랑군 不而縣으로 생각된다. 그 위치를 살펴보면...新唐書 卷四十三下 志 第三十三下 自鴨淥江口舟行百餘里,乃小舫泝(溯)流東北三十里至泊汋口,得渤海之境。又泝(溯)流五百里,至丸都縣城,故高麗王都。又東北泝(溯)流二百里,至神州。 압록강 어귀에서 배로 100여리를 가고, 이내 작은 배를 타고 동북으로 3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진개가 동호와 조선을 침략하여 2천리를 빼앗은 후 그 국경으로 삼은 만반한(滿潘汗)이 어디인지 생각해보자. 만(滿)은 고대에 문(文)과 통하는 글자이므로 한나라 요동군 문현(文縣)과 번한현(番汗縣)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한서 지리지 요동군 기록을 보자.文、莽曰文亭。番汗、沛水出塞外、西南入海。【應劭曰:「汗水出塞外、西南入海。番音盤。」師古曰:「沛音普蓋反。汗音寒。」】 요동군 문현. 왕망은 문정文亭이라고 했다. 번한현(番汗). 패수(沛水)가 요새 밖에서 출발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海로 들어간다. 응초가 이렇게 말한다. 한수(汗水)가 요새 밖에서 출발하여 서남으로 흘러 海로 들어간다. 番의 음은 반(盤)이다. 사고는 말하기를 沛의 음은 배(普盖反)이다. 汗의 음은 한(寒)이라고했다.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만반..
지난번에는 부소량 백아강 오덕지에 대하여 포괄적으로 이야기했는데 이제 각각에 대하여 논하여보고자 한다. 부소량이란 무엇이며 그 역사는 어떠한가? 1) 말뜻 부소량(扶踈樑)이란 우리 옛말로서 '소나무땅' 또는 '소나무나라'라는 뜻이다. 원래 松木을 뜻하던 옛말은 '부소나무'였는데[1] 이것이 도치되어 '소부나무'가 되고 습관상 주격조사 '이'를 붙여 '소부이나무'가 되었고 '이'는 '나'의 영향을 받아 '소부리나무'가 되었다. 그리고 'ㅂ'이 'ㅸ'이 되고 더욱더 'ㅇ'로 변하니 '소우리나무'가 되었다. 부소나무 > 소부나무 > 소부이나무 > 소이나무 > 소리나무 > 소우리나무아직도 우리는 소나무를 '소오리나무'라고 하기도 하는데 소나무의 옛말이 '부소나무'이기때문이다. 그리고 '나라'를 뜻하는 말을 ..
한서 지리지 낙랑군條에 위만조선의 도읍이라고 생각되는 평양현이 없다. 신채호선생께서는 패수현이 바로 평양현이라고 하셨지만 너무 이두글자에 집착하지 않으셨나 싶다. 한서 지리지를 잘뜯어보면 위만조선의 도읍은 낙랑군 평양현이 아니라 낙랑군 험독현이었다. (어라 험독현이 요동군이 아니라 낙랑군에 있었다?) 前漢書卷二十八下 地理志第八下 遼東郡.. 險瀆 應劭曰朝鮮王滿都也依水險故曰險瀆臣瓉曰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此自是險瀆也師古曰瓚説是也 요동군..험독현 應劭는 험독이 조선의 임금 위만의 도읍이고 강물의 험함에 의지하였기에 험독이라고 이름하였다고 말했다. 臣瓚은 왕검성이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으며 이것이 원래 험독이라고 했다. 師古는 瓚의 설명이 맞다고 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건 此自是險瀆이다. 사전에 설명한 각각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