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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독단론 (438)
獨斷論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 5부는 다음과 같다. 桓那部(환나부) 掾那部(연나부) 貫那部(관나부) 提那部(제나부) 沸流部(비류부) 중국사료에 나오는 고구려 5부는 대개 다음과 같다. 順奴部(순노부) 涓奴部(연노부, 消奴部로 적기도 하는데 삼국지를 따라 消奴部는 고려대상에서 제외시킨다.) 灌奴部(관노부) 絶奴部(절노부) 桂婁部(계루부) 내가 생각하기에 위 순서대로 동부 서부 남부 북부 내부이나 계루부의 말뜻은 중부가 아니다. i) 동부 桓은 현재 우리말 발음이 "환"이니 고대에는 'ㅎ'의 음가가 없었으므로 桓은 '환'이 아니라 '수안'으로 이를 중국사서에서 順으로 음차하였다. ii) 서부 삼국사기에서는 掾으로 쓰고 삼국지에서는 涓으로 적었으니 모두 발음이 '연'으로 같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후대의 사서에서 ..
朝鮮(조선)이 東方最古(동방최고)의 一國(일국)으로 壇君(단군)이 그 人文的始原(인문적시원)이라함은 朝鮮人(조선인)의 오래 前(전)부터 傳信(전신)하는 바이다. 遺文(유문)이 簡略(간략)하야 그 詳(상)을 엇기 어려우나 朝鮮民族(조선민족)의 淵源(연원)과 文物(문물)의 來歷(내력)을 오직 여긔 徵考(징고)할 밧게 업슬진대 獨一(독일)한 遺珠(유주)기에 더욱 그 보배로움을 볼지니 學者(학자)ㅣ 모름직이 反覆玩索(반복완색)하야 그 幽光(유광)을 闡發(천발)하기에 餘力(여력)을 남기지 아니할 것이다. 더욱 朝鮮(조선)은 東亞(동아)에 잇서서 支那(지나) 以外(이외)에 數千年(수천년) 通貫(통관)한 國土(국토)와 文物(문물)의 唯一(유일)한 保有者(보유자)이오 兼(겸)하야 그 人文地理的位置(인문지리적위치)가 正..
평양지역 유물에서 나온 연호를 정리해보았다. 대략 始元 2년 BC 85부터 元興 3년 AD 404까지 나타나고 있다. 낙랑군 설치가 BC108년라고 하지만 군사를 들여놓은 후에 민간인들이 차지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리기 마련이다. 역시 낙랑군 축출이 AD313년이라고 하지만 군사력으로 중국 군대를 몰아낸 후에 중국의 민간인들이 다 빠져나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법이다. 아래 평양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의 연대로부터 그리고 군사력 축출과 민간인 축출이 시간차가 난다는 사실로부터 평양은 곧 중국의 낙랑군 지역임을 알 수 있다. 前漢 始元 昭帝 86 – 80 BC 地節 宣帝 69 – 66 BC 永光 元帝 43 – 39 BC 河平 成帝 28 – 25 BC 陽朔 成帝 24 – 21 BC 永始 成帝 16 – 13 BC 綏..
고대국어에는 'ㅎ'의 음가가 없었다는 주장을 하는 교수들이 많다. 역사를 처음 공부하면서 드는 의구심 가운데에 이런 주제에 해당되는 사항이 있었지만 그때에는 고대국어에 'ㅎ'가 없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의구심은 그저 의구심으로 끝나고 말았었다. 대개 지금 'ㅎ'으로 발음되는 음가가 고대에는 대개 'ㅋ'이었고 때때로 'ㅅ'이었단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머리에 생각나는데로 정리해보자. 아사달을 九月山이라 했다면서 九와 "아사"가 그 음이 비슷하다고 하였다(어디서 읽었는지는 까먹었음). 이제보니 九의 고대음가는 '아홉'이 아니라 "아순"와 비슷한 음가였다. "졸본"이라 쓰여져있기도 한 고구려 첫 도읍이 "흘승골성"이라고 했으니 고대국어에는 'ㅎ'이 없었으므로 우리 고대국가에서는 紇이 "흘"이 아니라 "슬"이니 ..
대개 치우가 탁록에서 살해당했다고 알고 있는데 아주 다르게 치우를 청구에서 죽였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周易函書約存卷八 蚩尤出自羊水入肱入趾䟽首登九淖以伐空桑黃帝殺之于青丘 繹史卷五 歸藏蚩尤出自羊水入肱入趾疏首登九淖以伐空桑黃帝殺之於青丘 管城碩記卷二十 蚩尤作亂歸藏啓筮曰蚩尤出自羊水登九淖以伐空桑黄帝殺之於青丘 廣博物志卷九 蚩尤出自羊丘入肱入趾疏首登九淖以伐空桑黄帝殺之於青丘 御定淵鑑函卷五十五 歸藏啓筮曰蚩尤出自羊水入股入趾疏首登九淖以代空桑黄帝殺之於青丘 모두다 똑같은 출처군요 歸藏의 啓筮... 해동역사에서는 이걸 인용하면서 청구는 齊의 밖에 있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기록은 여러가지가 있으니 확실한 유적 유물이 나올때까지 한가지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 황제(黃帝)가 치우(蚩尤)를 청구에서 죽이고 강고곡(棡鼓曲) 10장..
보통 "한"이라 하면 그 뜻을 多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으므로 주의해야한다. 계림유사를 보면 漢으로 음차한 것 가운데 白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白米曰漢菩薩 이건 "흰쌀"을 漢菩薩(한보살)로 음차했다는 말이다. 중세국어 표기를 빌리자면 "흰"은 ""이고 "쌀"은 ""이므로 ""을 漢(한)로 음차하고 ""을 菩薩로 음차했음을 알수 있다. 銀曰漢歲 여기선 "은(銀)"을 漢歲(한세)라고 음차했는데 오늘날말로 "흰쇠"이며 중세국어 표기를 빌리면 역시 "쇠"임을 알수 있다. 즉, 漢은 白의 뜻으로도 쓰였다. 그리고 현대국어의 'ㅎ'의 음가는 고대국어에서 'ㅅ'과 'ㅋ(ㄱ)' 그리고 심지어는 'ㅂ(ㅍ)'에서 분립되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漢으로 음차된 고대국어의 지명이나 인명..
순우리말 가루 - 딱딱한 물건을 보드라울 정도로 잘게 부수거나 갈아서 만든 것. 거루 - 돛이 없는 작은 배. 거룻배 고루 - 차이가 없이 엇비슷하거나 같게 골고루 - 고루고루 그러루 - 대게 정도나 형편따위가 그러한 모양 그루 - 그루터기. 풀이나 나무 따위의 아랫동아리. 또는 그것들을 베고 남은 아랫동아리. 나루 - 강이나 내,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일정한 곳. 두루 - 골고루 빠지없이 마루 - 등성이를 이루는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 모루 - 대장간에서 불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 벼루 - 먹을 가는 데 쓰는 문방구. 벼루 - 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벼랑 부루 - 한꺼번에 없애지 아니하고 오래가도록 늘여서. 시루 - 떡이나 쌀 따위를 찌는 데 쓰는 둥..
이 글은 우리민족의 사라진 낱말인 "단"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함이다. "단"이란 현대의 우리말로 "땅" 혹은 "영토" 혹은 "나라"를 뜻한다. 단군조선의 나라이름인 辰檀(센단), 발해의 나라이름인 震旦(센단), 遼라고도 불리었던 契丹(셜단), 위 모두 "단"을 붙여 나라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런 "단" 계열의 지명이나 국명은 대체로 呑(탄), 旦(단), 頓(돈), 丹(단), 屯(둔), 檀(단) 등으로 나타나며 이번 첫 번째 조사에서는 가장 많이 보이는 呑 계열의 지명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삼국사기 * 경(广+京)谷縣, 一云首乙呑 (경곡현은 또한 수을탄이라고도 한다) 경(广+京)은 음이 “경”이다. 강희자전에 뜻이 倉(곳집)이라고 하였다. (广+京)의 訓讀(훈독)이 首乙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谷의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