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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독단론 (438)
獨斷論
한서 지리지 낙랑군條에 위만조선의 도읍이라고 생각되는 평양현이 없다. 신채호선생께서는 패수현이 바로 평양현이라고 하셨지만 너무 이두글자에 집착하지 않으셨나 싶다. 한서 지리지를 잘뜯어보면 위만조선의 도읍은 낙랑군 평양현이 아니라 낙랑군 험독현이었다. (어라 험독현이 요동군이 아니라 낙랑군에 있었다?) 前漢書卷二十八下 地理志第八下 遼東郡.. 險瀆 應劭曰朝鮮王滿都也依水險故曰險瀆臣瓉曰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此自是險瀆也師古曰瓚説是也 요동군..험독현 應劭는 험독이 조선의 임금 위만의 도읍이고 강물의 험함에 의지하였기에 험독이라고 이름하였다고 말했다. 臣瓚은 왕검성이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으며 이것이 원래 험독이라고 했다. 師古는 瓚의 설명이 맞다고 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건 此自是險瀆이다. 사전에 설명한 각각의 ..
북사(北史) 고구려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사람들은 모두 머리에 절풍(折風)을 쓴다. 그 모양은 고깔(弁)과 같은데, 사인(士人)은 두개의 새깃을 더 꽂는다. 귀한 사람들은 그 관(冠)을 蘇骨(소골)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자주빛 비단으로 만들어 금이나 은으로 장식한다. www.history.go.kr에서 퍼옴 주서에는 골소라고도 하였다. 소골(蘇骨)은 아래와 같이 고구려 사람이 쓰던 것으로 보통 텔레비같은데서는 신라 화랑들이 하고 다닌다. 蘇骨을 '속곳'을 음차하였고 이는 '솟은 갓'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1] 骨의 종성은 'ㄹ'이고 현대중국어에서도 gu로 발음하므로 종성이 'ㄷ'으로 대표되는 '곳'이라 해석하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다. 우리나라는 관직에 있는 것을 '벼슬'한다고 했음으므로 蘇骨이라고 표..
新羅(신라), 斯盧(사로), 斯羅(사라), 徐羅伐(서라벌), 鷄林(계림) 들로 불렸지만 이는 모두 닭벼슬[鷄冠]을 뜻하는 것이다...서라벌의 '벌'은 땅을 뜻하는 말이다. 원사국어해에 僧額埒, 滿洲語雞冠也, 卷十一作勝兀剌..라고 적혀있는데 僧額埒(승액랄)와 勝兀剌(승올랄) 모두 발음이 '신라'와 비슷하다. 신라는 고조선 유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고시대 조선은 하늘을 숭상하고 이를 숭배하는 매개체로 하늘높이 솟은 나무와 하늘을 나는 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라 화랑들은 새 깃털을 머리에 꼽고 다녔고, 중앙관리로 한자리 해먹는걸 '벼슬'이라고 했지만 '벼슬'은 곧 닭의 머리에 있는 '벼슬'이다.
조선(朝鮮)을 대개 '아침의 나라'라고 해석하지만 과연 중국의 한자를 빌어쓰던 시절에 국가명을 朝의 뜻에 맞춰 사용했을지 의문이 든다. 어떤이는 첫 도읍인 '阿斯達(아사달)'의 뜻을 에 따라 '아침의 나라'라고 해석하였지만, 아침을 중세국어에서 아이라고 하였으므로 '阿斯(아사)'의 발음과는 거리가 좀있다. 또는, 아시빨래의 '아시'를 구실삼아 아사달이 첫도읍이라면서 아침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하지만, 훈몽자회에 饙를 '아 분'이라 하였고 강희자전에 饙의 뜻은 半蒸飯라고 하였으므로 '아시'란 아침 또는 처음이란 뜻보다는 '반숙' 또는 '초벌'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렇다면 아사달은 무슨 의미일까? 고려사에 "有僧據讖云自扶踈山分爲左蘇曰阿思達(도참서에 의거하여 말하기를 부소산으로부터 나뉘어 좌소로 이..
朝鮮(조선)은 무슨뜻인가? 그 어느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대개 朝鮮(조선)이란 첫도읍의 이름인 '아사달'을 따라 아침을 뜻하는 朝를 썼다고 하지만, 이런 해석은 고대에 우리나라 지방명을 漢語(한어)로 번역하여 썼다고 결론내려야만 한다. 그러나 경덕왕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지방명은 대개 음차이며 朝鮮(조선)이란 이름이 尙書(상서)에 처음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이는 漢譯(한역)이 아니라 음차이어야만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朝鮮이란 우리고유어를 음차한 글자로서 쉽게 한자어로 쓰면 鳥白國(조백국)의 뜻이며 혹 鳳凰白國(봉황백국)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 이유를 우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鮮자로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鮮(선)의 뜻 어느시댄가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우고 자신에게 신성을 부여하..
사람의 몸에서 약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허리인데 그 어원은 대개 허(虛)한 곳이라는 뜻으로 '虛이'라 할수도 있겠다. 이는 아래와 같은 음운변화를 거쳐 오늘날 허리가 되었다고 본다. 虛이 > 헛이 > 허디 > 허리 허리와 비슷한 말로 '허구리'있는데 이 역시 '虛구리'로 해석할수 있으며 사투리에서는 허구리를 허구레라고도 한다. 즉, 허리와 허구리와 허구레는 모두 물건의 잘록한 장소나 부분을 나타내는 말로 '虛리', '虛구리', '虛구레'로 볼수 있다. 그렇다면 산꼭대기의 주변은 뭐라 할수 있을까? 꼭대기를 중세국어세서 '곡'라 한것을 고려한다면 산꼭대기의 주변은 '곡구레', '곡구리', '곡리'가 될수 있을 것이며, 공교롭게도 첫음절 '곡'이 한자어 高와 비슷하므로 인하여 '高구레', 高구리', '高리..
"경주 첨성대보다 200여년 앞서"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북한 김일성종합대 역사학부 연구집단이 평양시 대성구역 안학동에 있는 평양민속공원건설장에서 고구려시기 첨성대로 볼 수 있는 건축지 유적을 발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이 건축지가 4각으로 된 중심시설과 다른 7각으로 된 시설로 구성돼 있고, 이 유적에서 나온 숯의 연대측정 결과 5세기 초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중앙통신은 "고구려 시기 첨성대터는 신라 경주의 첨성대보다 200여 년 앞선 것"이라며 "이런 사실은 고구려가 삼국시기 천문학 발전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경북 경주에 있는 첨성대는 신라 27대 선덕여왕(재위기간 632∼647년)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
제1편 箕子世系와 箕子墓 제1장 箕子世系論 1. 箕子世系의 僞撰 箕子의 世系를 혹은 第四十二代 혹은 第四十一代라하야 그 說이 일정하지 못하니 이는 文聖王(?)으로부터 樂成王(?)지의 十九代는 틀림이 업스나 樂成王以後代에 와서 서로 糾錯되는 點이 잇서 一代가 줄고 늘고 한다. 東史에 이르되 敬孝王詢(?)으로부터 哀平王否(?)지의 年代及名諡는 가히 紀할수잇스되 그 父子兄弟의 次序는 가히 詳考할 길이 업다하엿다. 그 歷代諸王의 諡名에 잇서 箕子志를 東史에 對照하니 서로 錯誤되는 점이 만타. 이는 아마 箕子志의 誤일가한다. 東史에 據하면 朝鮮서 王號를 갓기는 箕子朝鮮 第三十二代의 赫聖王時代라고도하며 는 第四十二代(혹은 四十一代)의 箕準時代라고도 하야 그 說이 일정하지 못하다. 勝覽에 武康王이라함은 곳 箕準..